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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음주운전자 거짓말 못 잡아내는 경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김민욱 사회팀 기자

김민욱 사회팀 기자

지난달 16일 오후 9시쯤, 경기도 성남의 한 주택가에서 제네시스 차량이 건물 벽과 우체통을 들이받은 뒤 달아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즉시 차적을 조회해 제네시스 소유주를 찾아갔다. 차 주인 A씨는 자신의 집을 찾아온 경찰에게 “대리기사가 운전해 집으로 왔는데, 술에 취해 뒷자리에서 자느라 사고 상황은 몰랐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A씨는 자신이 미리 섭외한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경찰에게 알려주면서 “이 사람이 대리기사니까 통화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A씨의 거짓말은 폐쇄회로(CC)TV로 밝혀졌다. A씨가 뒷좌석이 아닌 운전석에서 내리는 장면이 확인된 것이다. 경찰은 A씨를 즉각 경찰서로 끌고 가려 했지만 때는 늦었다. A씨가 은근슬쩍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기 때문이다. A씨는 1주일 뒤 경찰에 나와 조사를 받았다. 그는 “운전 미숙으로 사고를 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당시 대리기사에게 운전을 맡겼다는 거짓말을 한 게 확인됐지만, 음주측정을 하지 않아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가 얼마였는지 기록이 없는 경찰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경찰 내부에선 이 같은 음주운전 은폐 시도가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 말 음주운전 기준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이른바 ‘윤창호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한다.

최근엔 경기 의정부에서 만취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낸 뒤 운전자를 바꿔치기한 혐의로 기소된 30대에게 징역 6년이 선고되기도 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를 들이받은 범인은 사고가 나자마자 동승자에게 “이번에 걸리면 징역”이라며 “변호사 비용을 다 부담할 테니 대신 운전한 것으로 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창호법의 시행으로 6월 말부터는 음주운전자에 대한 면허 정지·취소 기준도 강화된다. 하지만 술 마시고 사고를 내는 것에 대해 관대한 의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범죄는 반복되고 이를 감추려는 시도 또한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성남의 제네시스 운전자가 경찰에게 버젓이 거짓말을 했는데도 일주일 뒤 출석해 조사받게 된 것도 ‘술 마셨으니…’ ‘술이 원수지…’와 같은 종전의 온정주의가 반영됐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김민욱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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