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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무역 다변화가 미·중 충돌에서 우리가 살 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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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중 무역전쟁과 우리의 선택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현재 미국과 중국은 상대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통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는 세계 1, 2위 경제대국(G2) 간에 벌어지는 근린궁핍화정책이 양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국제금융·외환·증권 시장이 크게 요동치는 이유다. 게다가 무역과 금융 양 측면의 대외 의존도가 남달리 높을 뿐 아니라, 이들 G2 국가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40%에 이르는 우리에게 그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일시 봉합해도 패권 경쟁 계속될 듯 #미·중 경쟁, 경제·군사에서 장기화 #세계 리더십 공백 따른 어려움 우려 #규제 대혁파 통해 경제 활력 찾아야

우리는 적절한 대응책 마련을 위해 우선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것이 수차례의 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무역 차원의 갈등인지, 장기화가 불가피한 구조적 복합성을 지닌 문제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당초 미·중 무역전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對)중국 무역적자를 해소하겠다며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로 시작했다. 그런데 현재 미·중 갈등 이슈는 미국의 지적재산권 보호, 기술이전 강요 방지 등 미국 기업의 기술 보호를 위한 중국의 법제화가 초점이 되고 있다. 이런 조치는 미국 기업의 경쟁력 유지에 도움이 돼 궁극적으로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경제력뿐 아니라 군사력을 기르는 핵심 요소가 바로 기술이란 사실이다. 중국은 2050년까지 군사력과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 면에서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중국몽(中國夢) 달성을 위해 ‘중국 제조 2025’란 중간 목표를 세우고 그 핵심에 선진기술 확보를 두고 있다. 현재 미국은 중국의 선진기술 도용과 기술확보 방법의 불법성·불공정성을 문제 삼고 있다. 현재 미·중 충돌은 기존 초강대국과 새로운 패권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라 간의 패권 경쟁임이 분명하다.

일찍이 덩샤오핑은 중국의 미약한 국력을 인정하고 실력 배양에만 힘쓰자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대외전략으로 삼았다. 그러나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고속성장으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이같이 중국의 부상을 세계의 위협요소로 보는 서방국의 시각을 불식시키기 위해 후진타오는 화평굴기(和平崛起)를 내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 경제 비중이 많이 늘어나고, 미국과의 경제력 차이가 빠르게 줄어들게 됨에 따라 시진핑 시대에 들어오면서 “중국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룩하고, 중국의 과거 영광을 되찾겠다는 중국몽을 당당하게 내걸게 됐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더욱이 이 중국몽 달성을 위한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건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 중국 제조2025 등 구체적 프로젝트들이 중국 스스로가 놀랄 만큼 성공리에 추진돼 중국의 자신감은 더욱 고조됐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는 이미 80여 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주요 7개국(G7) 중 이탈리아도 올해 들어 중국과의 일대일로 참여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당초 중국 스스로 상당한 어려움을 예상한 AIIB는 현재 미국·일본을 제외한 세계 주요국이 참여하는 다자기구로 발돋움했다. 중국은 이미 인공지능(AI)·빅데이터·자율자동차·드론 등 4차 산업에서도 미국을 앞서거나 버금가는 지위까지 가 있다. 중국의 통신장비 회사인 화웨이는 5세대(5G) 통신 표준 선점을 위해서도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미국은 화웨이의 미국 우방국가 진출을 직접 저지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을 역설한 2017년 전당대회에서 중국은 패권 국가로의 야심이 없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은 중국의 패권국을 향한 구체적 행동과 정책을 보면서 시 주석의 수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1~2년 사이에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중국에 대한 과거의 ‘순진한’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대중국 전략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서방세계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법규에 근거한 세계무역기구(WTO)처럼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에 중국이 합류하게 되면 자유시장 경제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정치체제도 점차 민주화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로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최근 유럽연합(EU)은 공식 보고서에서 중국을 체제적 라이벌(systemic rival)로 규정했다. 미국 조야에서 나온 최근 보고서에서도 대중국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의회의 민주·공화 양당 지도급 인사들이 최근 대중국 강경정책을 지지하고 나선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대중국 강경 정책으로 선회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현재 미·중 갈등은 양국 간 상이한 경제체제(자유시장 경제체제와 국가주도시장경제체제)의 충돌이란 측면에서도 해결이 더욱 어렵고 복잡하다. 중국의 국가주도 경제체제 아래에서는 정부 소유 기업에 대한 각종 보조금 지급과 지원으로 우수한 해외 인력을 대량 확보하고 연구개발(R&D)과 기술 획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미국은 이런 방식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의 민간 기업과의 불공정한 경쟁을 중국 정부가 뒷받침하고 있다고 본다.

양국 체제 간 충돌 이면에는 정부 역할에 대한 상이한 문화와 전통의 영향도 크다. 서방에서는 정부를 ‘필요악(惡)’으로 보지만, 중국의 전통적 시각은 ‘필요선(善)’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오래전에 ‘문명의 충돌’ 가능성은 중국과 서방과의 관계에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오랜 문화와 전통에 뿌리를 둔 체제 간 충돌은 단기간에 해소될 수 없다. 게다가 중국인 모두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수모의 세기’를 넘어 옛 영광을 되찾고 중국이 세계 질서의 중심이 되려는 야심 찬 목표를 쉽게 포기할 리 없다. 1985년 플라자 합의 같은 해결 방식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다음 달 일본 G20 정상회의에서 무역분쟁을 의제로 만날 것으로 보인다. 양국 모두 어느 정도 타협의 여지를 두고 대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협상의 결렬 아닌 연기를 포함하는 일종의 합의 가능성은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각각 다른 동기와 전략에서 임시방편의 ‘딜’을 필요로 한다.

내년 재선을 치러야 할 트럼프는 국내 정치 차원의 단기 이해타산에서 중국과의 협상 성공을 외칠 수 있는 딜이 필요하다. 반면에 시진핑은 중국몽 실현을 위해 중국식 장기 전략적 차원에서 시 주석 개인 체면과 위신에 손상이 되지 않는 수준의 딜로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딜도 임시방편적 봉합에 불과하고, 양국 간 패권 경쟁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202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미국 경제를 앞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인당 소득이나 군사력 같은 하드파워는 물론, 동맹관계를 포함한 소프트파워에서 미국의 우위는 수십년간 지속할 것으로 봐야 한다. 양국 간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고려할 때 패권국과 신흥강자 간 전쟁이 불가피한 소위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우리가 우려해야 할 것은 글로벌 리더십 부재로 세계 경제의 지속 번영을 위해 필요한 자유무역, 금융·외환의 안정 같은 글로벌 공공재 공급 부족이다. 세계 경제가 어려움에 부닥쳤던 2차 대전 이전처럼 ‘킨들버거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런 여건에서 우리는 해외 시장 확보와 금융·외환 안정을 위한 실사구시의 경제 외교부터 무역 다변화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 일본과의 교역 비중도 늘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도 참여하고, 주요국과의 통화스왑도 확대해야 한다. 미국과의 흔들림 없는 동맹관계 유지는 필수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 후발개도국과의 외교 다층화 전략도 강구해야 한다.

중국은 경제적 레버리지를 통해 지역 패권국으로서 영향력 행사를 강화해 나갈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선택과 집중으로 대중국 우위 분야를 지켜내고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줌으로써 창의력 넘치는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개혁과 함께 기업가정신이 활기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차 산업화에 맞는 규제체제의 대혁파와 함께 대폭적 노동시장 개혁도 시급하다. 중국이 4차 산업 분야에서 이미 우리보다 앞서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