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에서 교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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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경원 밀입북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 발표를 들으면서 우리는 또 한 번 착잡한 심정이 된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국내의 유력한 종교 사회 운동 단체의 대표로 활동하고 국회의원까지 됐던가. 또 이런 사람이 4년간이나 북한과 접촉하면서 14차례에 걸쳐 7천여만원의 자금을 받기까지 공안당국은 뭘하고 있었던가.
이 사건으로 보아 제2, 제3의 서경원 사건은 과연 없으며 유사한 사건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지나 않은가, 발표를 보면서 이런 울적한 의문과 분노를 금하기 어렵다.
발표에 따르면 서 의원은 단순한 통일 열망으로 돈 키호테식 밀입북을 한 것이 아님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북한이 우리 사회의 허점을 노려 대남공작을 부단히 획책하고 있음도 이번 사건에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 사건의 진상을 냉철히 규명·평가하고 여기서 우리 사회의 주요 구성원들이 반성과 교훈, 개선책을 찾아야할 것이다.
우선 안기부의 수사결과는 그 동안의 보도로 대부분 알려진 내용이지만 뭔가 미진하다는 인상이 남는다. 가령 서 의원이 북한 지령에 따라 움직인 간첩으로서 국회에 침투했다면 정계나 재야의 다른 인물과의 연계기도는 없었던가 하는 점에 대해 명백한 설명이 없다. 서 의원에 대한 허담의 지령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이런 의문은 갖게 되는데 당국은 이에 대해 분명히 밝히는 게 좋겠다.
그리고 서 의원이 자신의 평양밀항에 관해 상당수 인물들에게 공공연히 실토하고, 심지어 인터뷰까지하는 등 보통 간첩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언동을 했다는데, 그 이유도 궁금하다.
이런 의문점에 대해서는 검찰과 안기부가 계속 수사해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다음으로 생각할 일은 이번 사건의 수사에서 감지되는 문제점이다. 발표를 들으면 서 의원의 지난 4년간 행적 가운데 당국이 어느 단계, 어떤 행위에서부터 사건의 낌새를 지지하고 수사를 시작했는지는 통 알 길이 없다. 문익환 목사· 임수경양 밀입북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당국의 대공수사 능력에 대해 사실 걱정이 많다. 허점을 보완, 개선하는 노력이 곧 뒤따라야 할 것이다.
수사체계와 테그닉에 있어서도 문제점은 지적될 수 있다. 이번의 경우 수사를 지휘해야할 입장인 검찰은 발표 창구나 맡았고 무리하게 항공기를 체공시키는 고압적 체질을 드러내기도 했다. 개혁의 새 시대를 맞아 이런 점에 대한 반성과 개선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번에 대량 적용된 부고지죄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있어야할 것이다. 이 죄 자체의 윤리성·도덕성을 두고 논란이 많을 뿐 아니라 이번의 경우 형평을 잃었다는 지적도 많다.
정치권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평민당은 서 의원의 입당·공천경의에 대한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번 사건으로 평민당이 피해의식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의혹의 눈길을 받게 되는 것도 불가피하다. 따라서 더 이상 수사를 피하기보다는 적극 협조하는 것이 떳떳하리라 본다.
정부·여당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 평민당의 위축을 틈타 5공 청산을 어물쩍 넘길 호기로 삼거나 고치겠다던 보안법도 안 고친다는 식의 수구적 발상이 나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재야운동권도 이번에 경각심을 갖는 게 필요하다. 북한이 민주화 운동, 학생·농민운동 등을 주요공작대상으로 삼고 있음이 명백해진 만큼 스스로의 순수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외부 불순 세력의 침투나 영향을 각별히 경계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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