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비 분담 압력만은 아니다|주한 미군 왜 들먹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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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의 주한 미군 감축 논의가 최근 부쩍 활발하다. 빈도와 발론자 등 논의의 성격이 점차 변화하고 있어 주목된다. 주한 미군 감군론이 어제 오늘에 국한됐던 것은 물론 아니다. 특히 「레이건」집권 후반 야당인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국방 예산 문제와 관 련한 철군·삭감론이 간간이 의회에서 제기돼 왔다.
그러나 요즘 나오는 감군론은 모양이 다르다. 의회는 단순한 논의를 넘어서 아예 감군법안을 제출한 상태에 들어섰다. 이럴 때마다 언론은 미국의 철군 관련 보도에 나섬으로써 이제 주한 미군 감축 문제는 미 일반에도 익숙한 현안으로 돼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게 행정부쪽 자세의 미묘한 변화다. 이제까지 행정부는 세계 평화·지역 안보·동맹 관계 등을 내세워 주한 미군에 관한 변화 가능성을 부인해 왔다.
미 합참의장 「윕리엄·크로」해군 제독은 지난주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연설하면서 『미군의 한국 주둔은 정치적·군사적인 두 가지 내용이 포함돼있으며 오랫동안 소기의 역할을 훌륭히 해왔다』고 말하고 특히 군으로서는 철군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한 사람의 군인으로 여러분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재정 압박 때문에 모든 것이 해마다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국방 예산의 변화에 따라서는 주한 미군의 장래도 변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보다 앞서「리처드·체니」국방 장관이 지난 6월말 하원 군사위에서 행한 발언도 주목할만하다. 그는 『현 단계에서 주한 미군의 감축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기존 행정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시」가 이미 제의한 3만명의 유럽 주둔 미군 삭감안은 『궁극적으로는 한국과 연관지어 개발될 수 있는 것』이라고 꼬리를 달았다.
물론 이 같은 행정부·군부 관계자의 발언은 지난 5월 주한 미군 규모를 1만명으로 줄이자고 주장한 「칼·레빈」상원 의원 보고서와 92년까지 미군을 1만명 철수하자는 내용으로 지난달 제출된「데일·범퍼스」상원 의원 등의 법안에 비하면 지극히 조심스런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종전의 행정부측 발언 자세 및 내용과 비교할 때는 상당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미 언론도 이 사실을 크게 부각시키고있다.
과연 미국이 주한 미군 감축을 계획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 실천에 옮길 것인지에 관해서는 아직 미 행정부내 누구도 단서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한 미군에 관한 미 행정부의 입장은 철군 반대다. 동시에 또 분명한 사실은 미군 장래 문제에 관한 검토도 불가피하다는 미 정부의 입장이다.
철군 검토가 불가피한 배경은 허다하다. 그 중에서도 재정적자가 최대 요인이다. 반면 한국은 경제 성장·국방력 증가 쪽이다. 한반도 주변은 한국의 북방 정책과 소중 화해로 근래 없던 긍정무드다. 세계 정세는 「고르바초프」의 상호 감군 제안과 「부시」의 유럽 미군 감축 응수 등으로 냉전 종결론까지 나오고 있다. 굳이 한국 재야의 반미감정, 「양키고 홈」 주장까지 꺼낼 필요 조차 없을 정도다.
이런 총체적 분위기 속에서의 의회가 적극적인 철군공세를 벌이고 있어 미 행정부는 가깝게는 대의회 대응 전략을 위해서라도 주한 미군에 대한 장기대책 수립이 불가피한 처지가 된 셈이다. 더군다나 미 행정부는 의회에서 거세게 일어온 지방들의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를 등에 업고 유럽·일본과 아울러 한국 정부를 상대로 주둔군 지원 확대 등 협상을 벌여왓다.
이 같은 사정에 비추어 급작스럽게 활발해진 철군 논의는 공교롭게도 연례 안보 회의 개최 시기와 일치함으로써 방위비 분담을 늘리려는 압력 수단이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 외교 소식통은 근간의 논의가 이 같은 방위비 분담 증가 차원만이 아닌 것으로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미측이 외교 채널을 통해서도 한미 정부간에 장기 대책 수립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고 이 소식통은 전하고 있어 단순한 압력 수단만은 아닌 것 같다. <워싱턴=한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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