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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수사권 조정, 검경 밥그릇이 아니라 국민 권익이 기준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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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립 관련 법안이 국회 ‘패스트트랙’에 오르자 검찰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검찰 간부들도 잇따라 비판 의견을 냈다. 해외출장 중인 문 총장은 귀국 날을 닷새 앞당겨 4일 귀국하기로 했다. 자칫 검찰의 ‘집단 항명’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립은 2년 전 문재인 정부 출범 때부터 추진됐다. 그동안 관련 부처·기관이 협의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도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정부 내부 소통·조율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방증한다. 검찰 측은 청와대와 여당이 자신들 의견은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고 주장해 왔다. “2년간 실컷 부려먹더니 토사구팽(兎死狗烹)하려 한다”는 볼멘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검찰 개혁 취지는 공권력의 전횡을 막자는 것 #시민 자유·권리 보호에 충실한 제도를 찾아야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검찰 측 주장엔 타당한 측면이 있다. 법안대로 조정이 이뤄지면 경찰은 검찰 지휘를 받지 않고 수사를 종결할 수 있게 된다. 경찰관이 무고한 시민에 대해 수사를 벌인 뒤 혐의를 못 찾았다며 끝내면 그만이다. 반대로 죄지은 자를 봐주면서 수사를 종결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검찰의 지휘·감독 때문에 쉽지 않았다. 조정안에도 영장청구권은 검찰이 그대로 독점적으로 갖게 돼 있어 어느 정도 견제가 가능하지만, 경찰의 수사권 오용이 빈번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경찰은 “경찰관들이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의 ‘버닝썬’ 사건에서 보듯 부패·유착의 폐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경찰의 권한이 커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수사권 조정은 ‘검찰 개혁’ 차원에서 진행됐다. 무소불위(無所不爲) 권한을 가진 검찰이 권력과 기득권층에 결탁해 공권력을 남용하고, 스스로가 거대한 기득권 세력이 됐다는 게 본래의 문제의식이다. 그러므로 검찰의 힘을 빼겠다는 게 개혁 취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사·기소 전횡을 막자는 것이지 힘을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와 여당이 만든 안을 보면 그 권한을 고스란히 경찰과 공수처로 옮겨놓는 모양새다. 경찰과 공수처라고 해서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하고 절제된 수사를 한다는 보장이 없다. 국민 입장에서 보자면 언제 횡포를 부릴지 모르는 ‘사또’가 하나에서 둘 또는 셋으로 늘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려졌지만, 아직 최소 3개월의 시간이 있다. ‘나중에야 어찌 되든 일단 검찰 손보기에 성공하면 된다’는 식의 무대포 개혁은 곤란하다. 국회는 국민이 억울한 일 안 겪도록 하는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 법안에 반영해야 한다. 국민 권익이 최우선이다. 검찰과 경찰도 조직 밥그릇을 계산하기 보다 시민의 자유·권리 보호가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수사권 조정의 기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 권익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