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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념 고집이 부른 공기업 부실…청구서는 국민이 받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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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민에게 예비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기획재정부가 그제 발표한 339개 공공기관의 2018년도 경영실적 얘기다. 한 해 전 7조2000억원이었던 전체 순이익은 1조1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년 전의 15조4000억원에 비해서는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부채는 500조원을 넘어 503조8000억원에 이르렀다.

이념 정책이 공기업의 재무건전성을 갉아먹었다. 탈원전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전력은 지난해 1조2000억원 손실을 봤다. 국민건강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한 ‘문재인 케어’는 흑자였던 건강보험공단을 무려 3조9000억원 적자 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친노조 정책과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에 따른 고용 참사는 공기업 부담을 가중시켰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대거 바꾸고, 정부가 공공기관에 신규 채용을 독려하면서 한 해 전보다 전체 정원이 3만6000명(11%) 늘었다. 추가된 복리후생비 부담만 연간 780억원이다. 인건비 지출은 최소 1조원 이상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분간 경영 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문재인 케어는 더 확대할 방침이다. 탈원전 기조는 흔들림이 없다. 비싼 태양광·풍력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한다. 이로 인해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해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의 신용도를 한 등급씩 떨어뜨리기도 했다. 한전 등이 돈을 빌리려면 더 많은 이자를 줘야 한다는 뜻이다. 공공기관 전체 임직원 수는 올해 들어 3월까지만 2만1000명이 더 늘었다. 민주노총에 끌려다니다시피 하는 정부와 여당이 친노조 정책을 재고할 가능성 또한 높지 않아 보인다. 경영진에는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가 들어찼다. 바른미래당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해 말까지 약 1년10개월 동안 공공기관에 캠코더 인사 434명이 내려갔다. 이들이 정권과의 ‘코드 경영’을  쉽사리 바꾸려 할까.

물론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는 공기업으로서 경제·고용 위기 극복에 동참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공기업도 기업이다. 수익성을 무시해서는 영속할 수 없다. 쌓이는 적자와 빚을 언젠가는 해소해야 한다. 그건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부담이다. 요금을 올리거나 세금으로 메꿔야 한다. 공기업 적자와 부채를 ‘예비 청구서’라 부르는 이유다. 문재인 케어로 의료 혜택이 확대됐지만, 그 때문에 악화하는 건강보험 재정을 벌충하는 것 역시 국민 몫이다.

그래서 과거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를 추진했다. 구조조정을 해 경영의 효율성을 높였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현 여당도 공기업 부채 증가 등을 매섭게 질타했다. 그러더니 정권을 잡은 지금은 공기업을 동원해 온갖 보따리 풀기에 여념이 없다.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기느냐”며 방만 경영을 꾸짖던 일은 까맣게 잊은 듯하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이대로 가면 결국 돌아올 부메랑은 지금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 세대들이 맞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