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레이건」의 야구해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의 대통령들은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면 대부분 고향으로 낙향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었다. 대통령들이 대부분 국회의사당을 거쳐 백악관에 진출했기 때문에 지역기반이 든든한 자기의 출신구는 바로 마음의 고향이다.
초대 대통령「조지·워싱턴」은 퇴임하자마자 수도 워싱턴 근교의 마운트버넌 농장으로 돌아갔다.
평소 『어떤 경우에도 게으름은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해봤던 그는 야인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누구 못지 않게 부지런했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마운트 버넌에 돌아온 지 1년만에 늙은 농장 관리인이 견디다 못해 두 손을 들고 사임했겠는가.
백악관을 떠날 때 각료들로부터 공구 세트를 선물로 받은 「지미·카터」대통령도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땅콩농장 일보다 목수 일을 더 즐겨했던 것은 유명한 얘기다.
그는 뉴욕 동부에 있는 낡은 건물 하나를 개조하여 10여 가구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 아파트로 만들어 놓았다. 물론 자원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자신은 대패질을 하고, 부인은 못을 박았다.
「린든·존슨」대통령도 퇴임하자 곧장 농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매일 몸소 자동차를 몰고 농장을 돌아다니며 일꾼들을 독려하던 모습이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어제 날짜 중앙일보에는 워싱턴 특파원이 보낸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실려있었다. 전임 「레이건」대통령이 미국 프로야구 올스타전의 야구 해설자로 등장, NBC-TV의 마이크를 잡았다는 내용이다.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화면에 나타난 그는 야구 해설을 하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잊지 않았다. 그는 『6개월간 실직 상태였는데 내 장래를 여기서 찾는 것 같다』는 등의 농담을 해 시청자들을 즐겁게 했다.
비록 1회전만의 해설이기는 하지만 전직 대통령의 야구 해설이라니, 얼마나 건강하고 유쾌한 일인가.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헌정 40여년간 한 명의 대통령은 망명의 길을 떠나야 했고,한 분은 믿었던 부하에 의해 시해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퇴임 후엔 공원을 산책하며 시민들과 스스럼없이 지내겠노라고 약속했던 또 한 분은 산사에 갇혀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전직 대통령이 대패질도 하고 야구해설도 할 수 있는데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