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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빈곤한 노인 환자 넘치는 ‘병동사회’로 갈 건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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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호 33면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먹방 좀 자제시킬 방법이 없습니까?” 얼마 전 국회에서 열렸던 ‘건강친화환경 조성을 위한 기업공헌기반 마련 국회토론회’가 끝나고 참석자들끼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선 미디어가 ‘반(反)건강문화’를 퍼뜨린다는 성토가 나왔다. 지난해 정부가 국가비만대책을 발표하면서 ‘먹방에 가이드라인을 권고하고 모니터링하겠다’는 내용을 넣었다가 ‘먹방규제’ 논란으로 번져 혼쭐이 난 뒤 공식적으로는 미디어 책임론을 거론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국민건강에 큰 영향 미치는 미디어 #이젠 빈곤층 공격하는 질병 문제 등 #건강을 의학 아닌 사회 문제로 인식 #초고령 시대 건강 문화 더 고민해야

하지만 국민 건강 정책을 다루는 전문가들은 여전히 미디어가 건강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 된 시대에 음식으로 학대를 하는 듯한 먹방과 맛있는 음식을 찾는 프로그램은 개의치 않고 전파를 탄다. 전문가들은 먹방만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국민 건강에 이롭지 못한 영향을 미치는 건 각종 의학프로그램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요즘엔 질병을 놓고 의사들이 앉아서 오락물처럼 토크쇼를 하고, 어떤 음식이 어떤 질병 예방과 치료에 좋다는 식의 단순 의학정보를 전달하는 의학프로그램들이 많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진 식품은 반짝 품귀현상을 빚는 등 시장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들 프로그램이 대중의 의학 상식을 풍부하게 하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대중이 지나치게 잡다하고 단편적인 의학 지식으로 무장하면 질병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고, 민간요법이나 자가 치료를 시도하다 시기를 놓쳐 치료를 방해하기도 한다고 의사들은 지적한다.

한 참석자는 미디어들이 ‘명의(名醫)’를 소개하는 콘텐트도 비판했다. 주로 서울의 명의들을 소개해 지방 환자들이 명의에게 진료를 보려고 몇 달씩 기다리면서 서울에 있는 의료원으로만 몰린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방 거점 의료기관들이 부실해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지역 사람들이 가장 위급한 순간에 목숨을 건져주는 것은 가까운 지역 거점 의료기관들인데 시민들 스스로가 부실화를 재촉하면 정작 위급할 때 이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날 미디어 참석자는 나뿐이었으니 나 혼자 고스란히 욕을 다 먹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미디어가 건강문제에 대해 제대로 방향만 잡고 나선다면 그야말로 건강사회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기 경험보다 언론의 정보에 의존해 질병 등 건강 이슈를 인식하고 태도를 형성한다”고 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디어가 주목해야 할 건강문제는 이런 게 아닐까. 지난해 나는 청년 우울, 농촌비만, 폭염 등을 기획취재하면서 모든 질병과 심지어 환경재앙도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건강문제는 이제 단순히 생물학적·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와 불평등의 문제로 변질돼 있었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5년 안에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노인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는데, 지금도 노인 절반이 빈곤층이다. 단순 계산으로 인구의 10%가 질병에 취약한 빈곤 노인인구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시스템에다 의학기술 발전으로 질병 상태에서도 수명은 연장할 수 있다. 결국 이대로 간다면 짧은 미래에 우리는 활력이라고는 없는 ‘병동’ 같은 사회에 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재앙 같은 날을 맞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할 일이 많다. 보건정책은 현재의 질병관리 중심에서 건강관리와 유지로 차원을 바꿔야 할 것이고, 시민에게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는 방안을 교육하고, 직장들도 건강관리 서비스 시스템을 갖춰야 할 거다. 시민들도 나라가 먹방규제론을 꺼내면 비난만 할 게 아니라 먼저 먹방같이 건강을 해치는 프로그램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할 거다.

이런 사회적 의미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게 미디어다. 대중매체가 등장한 이래 각종 보건 캠페인이 성공한 건 매체의 힘이었다. 산아제한부터 금연캠페인까지 말이다. 미디어들이 건강 문제를 오락이 아닌 사회문제로 바라보고 건강 문화를 만드는 일에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곧 대면하게 될 초고령화 사회가 조금은 더 활력있는 건강한 모습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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