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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이하 맞춰라' 카톡 한줄에 LG화학 1000억 공장 문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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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대기 오염물질 측정업체와 짜고 미세먼지 원인물질 수치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는 LG화학 여수공장의 모습. 환경부는 LG화학 외에도 여수산단 입주 기업 전체로 성적서 조작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대기 오염물질 측정업체와 짜고 미세먼지 원인물질 수치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는 LG화학 여수공장의 모습. 환경부는 LG화학 외에도 여수산단 입주 기업 전체로 성적서 조작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탄화수소 성적서 발행은 50언더(이하)로 다 맞춰주세요.”

환경부, 대기오염 성적서 조작 업체 적발 #측정업체 4곳 적발에 대기업 줄줄이 엮여 #환경단체 "업체 감독 안한 정부 책임도 커"

카카오톡 메시지에서 시작된 대기 오염물질 측정 성적서 조작 사건이 여수산단 전체로 확산고 있다. LG화학은 환경부가 회사 직원과 대기오염 측정업체 직원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하자 하루 만에 연 매출 1000억원 규모의 PVC(폴리염화비닐) 공장 폐쇄를 발표했다. LG화학·한화케미칼 등 산단 입주 기업 6곳에 대한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이와 별개로 국내를 대표하는 석유화학 기업인 GS칼텍스・롯데케미칼・금호석유화학 등 여수산단 입주 기업 23곳에 대한 환경부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미세먼지 게이트'로 번질 조짐이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국가산업단지 전경. 국내 굴지의 석유화학 기업이 입주한 여수산단에선 입주 기업의 대기 오염물질 성적서 조작이 최근 확인됐다. 성적서 조작은 산단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사진 여수시청]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국가산업단지 전경. 국내 굴지의 석유화학 기업이 입주한 여수산단에선 입주 기업의 대기 오염물질 성적서 조작이 최근 확인됐다. 성적서 조작은 산단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사진 여수시청]

그동안 여수산단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작은 환경부 산하 영산강유역환경청이 대기오염 측정업체 4곳을 적발한 지난해 연말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측정업체가 굴뚝에서 채취한 샘플량을 줄이거나 측정부를 허위로 기록한 게 발견됐다. 측정업체가 적발되자 이들과 계약을 한 여수산단 입주 기업이 넝쿨에 달린 감자처럼 조사 대상에 올랐다. 이번에 적발된 측정업체 4곳(지구환경공사·장우엔텍연구소·동부그린환경·에어릭스)은 여수산단에서 이른바 '메이저' 업체로 통했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 사업장에서 주로 일감을 받아 측정대행을 해왔다고 한다. 환경부 조사에서 대기업 사업장이 많은 이유다.

금호석유화학 여수고무2공장 전경. 환경부는 대기 오염물질 성적서 조작 등으로 금호석유화학을 조사하는 중이다. [사진 금호석유화학그룹]

금호석유화학 여수고무2공장 전경. 환경부는 대기 오염물질 성적서 조작 등으로 금호석유화학을 조사하는 중이다. [사진 금호석유화학그룹]

발 빠르게 고개를 숙인 건 카톡 메시지가 적발된 LG화학이었다. LG화학은 지난 17일 신학철 대표 명의로 사과문을 내고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로 책임 있는 조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 회사는 신 대표 주재로 회의를 열고 공장 폐쇄도 결정했다.

여수산단에 입주한 GS칼텍스 제3중질유분해시설. GS칼텍스는 대기 오염물질 성적서 조작 등으로 환경부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 GS칼텍스]

여수산단에 입주한 GS칼텍스 제3중질유분해시설. GS칼텍스는 대기 오염물질 성적서 조작 등으로 환경부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 GS칼텍스]

대기 오염물질 초과 배출에 따른 과태료는 일반적으로 500만~10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번에 적발된 기업들은 어떤 이유로 무리하게 성적서를 조작했을까. 이에 대해 여수산단 한 사업장 관계자는 "(대행업체의 배출량 조작은) 지금까지 관행처럼 이뤄져 온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증거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측정치가 기준치보다 낮았지만 이를 더 축소해 성적서를 만든 기업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됐다.

여수산단에 위치한 롯데케미칼 공장에서 직원들이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롯데케미칼도 대기 오염물질 성적서 조작으로 환경부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 롯데케미칼]

여수산단에 위치한 롯데케미칼 공장에서 직원들이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롯데케미칼도 대기 오염물질 성적서 조작으로 환경부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 롯데케미칼]

이번 사건은 검찰 수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결론이 날 전망이다. 환경부 조사 결과에 반박하고 나선 기업이 있어서다. 한화케미칼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측정업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있지만, 자체 조사 등을 통해 측정업체와 회사 직원이 말을 맞췄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수소 보일러 사용 등으로 대기 오염물질 의무 측정 대상에서 제외된 사업장이지만 지역 환경을 생각해 측정업체에 일을 맡겨왔다. 성적서를 조작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GS칼텍스와 롯데케미칼은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란 원론적인 입장만 밝힌 상태다.

여수산단에 입주한 한화케미칼 공장 전경. 환경부는 대기 오염물질 성적서 조작 혐의로 한화케미칼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연합뉴스]

여수산단에 입주한 한화케미칼 공장 전경. 환경부는 대기 오염물질 성적서 조작 혐의로 한화케미칼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연합뉴스]

여수산단 사태를 두고 정부의 국내 미세먼지 관리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적서 조작 사태 이면에 정부의 측정업체 부실 관리가 있다는 것이다. 측정업체는 환경부 필증을 받아 지방자치단체에 측정대행업을 등록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의 사후 관리가 사실상 전무했다. 이번에 적발된 측정업체 4곳도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연구원에서 필증을 받아 전남도청에 측정대행업으로 등록하고 사업을 운영했지만 1년에 한 차례 도청에서 시료 채취 등 측정 숙련도 검사를 받는 게 전부였다. 조환익 여수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대기오염 측정업체를 정부가 사실상 방치한 꼴"이라고 말했다.

강기헌·오원석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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