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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안인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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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윤정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윤정민 콘텐트팀 기자

윤정민 콘텐트팀 기자

A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심각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술 없인 잠들지 못했고, 주변과 갈등이 잦았다. 주정과 폭언이 심해질수록 그는 고립됐다. 피해의식은 더 커졌다. 돈을 못 벌자 가족마저 등 돌렸다고 혼자 판단했다. 오해와 폭력의 악순환. 그의 사고궤도는 정상 범주를 한참 벗어났다. 누구도 통제하지 못했다. 매일 주변에 전화를 걸어 욕을 했고, 행패를 부렸고, 감옥까지 갔다.

출소 후 가족들은 정신과 치료를 권했다. 그러나 스스로 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본인 거부로 치료가 어려웠다. 강제적인 방법을 찾았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나 보건소의 턱은 높았고 도움은 미미했다. 가족들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몇 년간 감당했다.

진주의 끔찍한 사건 소식을 접한 뒤, 그를 떠올렸다. 그의 아버지를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해서가 아니다. 다만 문제는, 시스템이었다. 안인득에게도, A의 아버지에게도 우리가 마련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이 시스템은 병을 앓는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 쉽게 격리하고 감금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조현병을 앓는 사람들이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확률이 낮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가 재정비해야 하는 시스템은, 지금의 그들을 만든 원인을 깊게 파악하고 최대한 제거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들의 사연을 가족들이 이해하고 결국 병을 고칠 수 있도록 정부가, 기관이, 시스템이 도와야만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안인득을 철저히 탐구하고, 지금의 그를 만든 게 무엇인지 파헤쳐야 한다.

이는 그의 처벌과는 관련이 없다. 어떤 고난을 겪었든, 그는 가장 강한 처벌을 받고 오래 고통받아야 한다. 그의 과거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자칫 처벌을 가볍게 할 거라는, 분노에 찬 일부 주장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정신적으로 나약한 몇몇을 위해 우리 세금이 낭비된다는 생각도 타당하지 않다. 그의 삶을 탐구하는 것. 원인을 파악하고, 병을 치료하고, 아주 작은 확률마저 더 줄이는 것. 이를 위해 인력과 돈을 투자하는 것. 이는 우리를 위한 일이지, 결코 안인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윤정민 콘텐트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