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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후쿠시마 소송 패한 일본의 뒤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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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란 말을 남긴 사람은 미국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전설의 포수 요기 베라(1925~2015)다. 영화 ‘록키’의 주인공 발보아의 대사로 부활하면서 재차 유명해졌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명언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둘러싼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서 역전패한 일본은 이 말뜻을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21일 본지와 인터뷰한 WTO 분쟁 역전승의 주역 고성민(35)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분쟁대응과 사무관은 연신 “일본과 ‘마무리’가 남았다”고 말했다. 2심은 최종심이라 이론의 여지가 없는데도 고 사무관이 ‘마무리’를 언급한 건 일본 정부·언론이 판결을 두고 항의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문제는 정당한 논리에 근거한 ‘반격’이 아니라 ‘뒷다리 잡기’란 점이다. WTO 상소 기구 위원을 지낸 장승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일본의 ‘뒤끝’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취재일기 4/23

취재일기 4/23

일본의 뒤끝은 최근 정부가 잇달아 보여준 ‘억지’ 행보에서 드러난다. 한국이 승소한 직후인 12일엔 고노 다로 외무상이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만나 “한국 정부가 수입 규제를 완화해줬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한발 나아가 “일본은 패소하지 않았다. 한국에 대해 (수입 금지) 조치 철폐를 요구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23일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 외교 당국자 간 회의에서도 수입 금지 해제를 거듭 촉구할 예정이다.

일본 언론의 뜬금없는 ‘WTO 때리기’도 점입가경이다. 일본 최대 신문인 요미우리 신문은 사설에서 “WTO의 분쟁 처리 기능이 약화하고 있다”며 “상소 기구 재건을 포함해 WTO 개혁에 대해 각국과 연계해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우 성향 산케이 신문은 “WTO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난폭한 판단을 내렸다”며 “이번 결정이 WTO 개혁의 필요성을 재확인시켰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2월 한국이 패소한 1심 직후 “한국은 WTO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일제히 보도한 데서 180도 바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어느 나라나 ‘국익’을 위해 뛴다. 하지만 WTO 확정판결에 불복해 수산물 구매를 요구하는 건 외교 ‘금도’를 넘어선 처사다. 2심 판결에서 WTO가 강조했듯 일본과 인접한 한국 국민의 불안감부터 해소하는 게 먼저다. 일본이 책임 있는 국제기구 일원이라면 WTO 판정부터 깨끗이 수용하고 자국 수산물의 안전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역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전설의 유격수 어니 뱅크스(1931~2015)는 “당신의 정정당당함은 오로지 패배를 통해 증명할 수 있다(The only way to prove you’re a good sport is to lose)”고 말했다.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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