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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업 혼내기 보다 효율적 기금관리가 국민연금 본업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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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한 운영이다. 국민연금 얘기다. 투자전략 회의는 거의 하지 않고 주주권 행사 회의만 잔뜩 했다. 어제 신상진 자유한국당 의원과 한국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7년부터 올 3월까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29번 개최했다. 수탁자위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반대 같은 주주권 행사를 주로 논의하는 자리다. 이에 비해 기금의 투자 방향을 정하는 투자정책전문위원회는 같은 기간 3번밖에 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는 수탁자위가 9번 열리는 동안 투자정책위는 단 한 번도 모이지 않았다.

본말이 전도됐다. 투자정책위는 국민연금 기금을 국내·외 주식·채권·부동산·자원 중에 어디에 얼마나 투자할지 등을 정한다. 결정에 따라 국민연금 수익률이 크게 달라진다. 수시로 모여 세계 경제와 돈의 흐름을 논의하고 정책을 검토·수정하는 게 필수다. 그런데도 회의는 가물에 콩 나듯 열렸다. 참석률 또한 바닥이다. 세 차례 회의에는 위원 22명 중 5~7명만 나왔다.

반면 수탁자위는 훨씬 자주 모였다. 올해에만 한 달에 세 번꼴이다. 물론 수탁자위 결정을 통해 스튜어드십을 실행하는 것도 수익률을 높이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그건 투자정책을 정한 다음 단계다. 기본 투자정책이 엇나간 뒤엔 아무리 스튜어드십을 잘 발휘해도 수익률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국민연금이 적절한 투자전략 마련에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국민연금 운영에선 투자정책과 스튜어드십 관련 정책의 우선 순위가 바뀌었다. 이대로면 “본업은 뒷전인 채 기업 혼내주기 회의에만 골몰한다”는 소리 듣고, “연금 사회주의”란 따가운 눈총 받기 십상이다.

국민연금은 운영뿐 아니라 구조 역시 문제다. 투자정책위에 투자 현장 전문가가 없다. 교수·연구원 일색이다. 전문 연구진의 안목도 필요하지만, 돈의 흐름을 잘 아는 현장 전문가가 없다는 건 정상이라고 하기 어렵다. 돈을 금융투자회사가 아니라 연구자에게 맡기는 격이다. 투자정책위 등의 의견을 토대로 최종 의사를 결정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는 더하다. 노동·사용자 단체 대표와 장·차관 등으로 이뤄졌다. 보험사·사모펀드 대표 등에게 결정권을 맡겨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캐나다 국민연금(CPP)과 대비된다. 구조와 운영의 차이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6조원을 까먹었다. 국내 주식 수익률은 -16.8%였다. 반면 CPP는 8.4% 수익을 냈다. 국민연금 지배구조와 운영 방식을 고치는 게 시급하다는 방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