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학의 사건’ 별건수사, 검찰권력의 그림자를 더할 뿐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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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별건(別件) 수사’는 본래 수사 대상이 아닌 다른 사건을 조사함으로써 피의자를 정신적으로 압박해 의도했던 결과를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수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인권을 침해하고, 그 결과에도 금이 갈 수밖에 없다. ‘표적 수사’ ‘먼지털이 수사’와 함께 사라져야 할 대표적 관행으로 지적돼온 건 그래서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신종열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수사를 개시한 시기와 경위, 영장청구서에 기재된 범죄혐의의 내용과 성격, 주요 범죄 혐의 소명 정도에 비춰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어렵다”고 했다. 기각 사유로 ‘수사를 개시한 시기와 경위’를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윤씨 측이 영장실질심사에서 편 “별건 수사”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윤씨 영장청구서에 적힌 대부분의 혐의가 검찰 수사의 핵심인 김학의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씨 변호인은 영장심사를 앞두고 기자들에게 “개인 사건으로 윤씨 신병을 확보해놓고 본건(本件) 자백을 받아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수사가 과거 검찰의 ‘봐주기 조사’, 즉 직무유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5년의 시간이 흘러 주요 혐의 공소시효가 만료되거나 만료를 눈앞에 둔 시점에 뒤늦게 재수사에 나서면서 김 전 차관에 관한 윤씨 자백부터 받아내려다 보니 이런 수사를 벌이게 된 것 아닌가.

‘김학의 사건’엔 검찰 권력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검찰은 2013년, 2014년 두 차례 수사에서 진실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검찰권의 전횡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와서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또다시 과거의 구태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별건 수사를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 사건만큼은 더더욱 법 원칙에 맞게 수사해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사단이 “이러면 어떻게 수사를 하란 말이냐”고 반발하는 것도 구시대적이란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2017년 7월 취임 직후 “과잉 수사를 방지하겠다”며 별건 수사 관행 등에 대한 개선 의지를 밝혔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원칙에서 벗어난 수사를 하겠다는 건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치는 격이다. 수사단은 이제라도 제대로 된 수사로 제대로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검찰 수사가 바로 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