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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활발한 중·일, 북·러 짝짓기는 그저 남의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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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간 밋밋했던 북·러 사이는 물론 으르렁대던 중·일 간 접근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은 23일 칭다오(靑島)에서 열리는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관함식(觀艦式)에 욱일기를 단 일본 자위대 호위함을 받는다고 한다.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다. 이 때문에 그간 일본은 자위대 함정을 중국에 보낼 때면 걸지 않았다. 그랬던 일본 군함이 이번에는 버젓하게 욱일기를 게양하고 간다. “미국이 개의치 않는 데 똑같은 승전국인 중국이 왜 민감해하는가”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좋아진 중국 내 대일(對日) 정서 덕분이다.

미래지향적 자세로 한·일 관계 풀어야 #트럼프 메시지로 남북교류 올인 안 돼

하지만 한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제주 국제 관함식 때 욱일기 게양을 막아 결국 일본 함정이 오지 않았다. 우리가 과거에 얽매였던 반면 중국은 이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는 한, 일본이 중국 아닌 한국과 미래를 도모할 리 없다.

이뿐 아니라 칭다오 관함식 때 일본과 북한 등 10여개의 참가국 대부분이 대장급을 보내는데도 한국은 중장인 해군 참모차장을 파견한다고 한다. 행사에 불참하는 미국 눈치를 보는 모양이지만 이래서는 중국의 마음 역시 살 수 없다.

최근 숨 가쁘게 돌아가는 한반도 주변 흐름 속에서 우리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지난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중국 방문으로 상징되는 중·일 간의 놀라운 화해 속도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및 과거사를 둘러싼 분쟁으로 3~4년 전만 해도 양국 간 무력충돌설까지 돌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새롭게 다가가는 건 중·일뿐 아니다. 24·25일로 잡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을 통해 양측은 서먹했던 북·러 관계를 새롭게 다질 게 틀림없다. 김정은은 러시아가 대북 제재 완화에 나서줄 것을, 푸틴은 동방정책에 대한 북한의 도움을 주문할 공산이 크다. 이렇듯 북한은 이미 친해 놓은 중국에 이어 러시아와의 튼튼한 유대를 통해 북·중·러 반미 삼각 구도를 강화하려 한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은 우방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는커녕 전통적인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에서도 떨어져 나오는 형국이다. 강력한 대북 압박이란 국제사회의 공감대 속에서 제재 완화만 외치고 있으니, 문재인 정부에 대해 미·일이 불신을 드러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니 한·미 동맹이 허물어져 가는 와중에 미·일 간 군사협력은 날이 갈수록 탄탄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다른 나라엔 극비로 삼는 스텔스 기술을 일본에 전해주는 것도 이같은 흐름의 반영이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건넬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어떻게든 4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꽉 막힌 북한 비핵화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정부로서는 회심의 카드를 가진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더더욱 남북관계에 올인할까 걱정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그저 남북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적어도 미·중·일·러 등 주변 4대 핵심국가가 호흡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든 북한이 솔깃할 경제 지원책이든, 효과적인 대북 정책이 가능하다. 정부는 한반도 주변의 합종연횡을 그저 지켜만 보며 손 놓고 있어선 결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