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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돕는 결과될까 걱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너무도 고생이 많을 문환이에게.
지난번 한양대에서 보았을 때 너무나도 야위고 창백한 얼굴을 본 후 지금까지 마음이 아프구나.
아버지가 항상 말해왔듯이 공부보다 건강한 자식이 효자라고 했는데…. 어머니도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단다.
최근 너에 관한 보도에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너를 만나 긴히 하고 싶은 말을 전할 방법이 없어 지금 이런 편지를 쓴단다.
문환아, 내가 그렇게도 반대했던 총 학생회장이 되었을 때 벌써 걱정이 되었다. 그 후 부모와 상의도 없이 평축 위원장이 되었다 기에 각 학교마다 다 있는 시한부 직책이거니 했는데 이런 지경이 되었으니 이건 너무 충격이 크다.
지난날 공산정권이 싫어 월남한 이후 너의 할아버지는 그 어려운 지리산 토벌부터 경찰생활을 시작하셨고 자유당 시절에는 형사반장을 하시다 그 이유로 경찰을 떠나셨고 가족의 생계 걱정으로 간질증세까지 앓으시지 않았느냐.
이 아버지도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에 대학 진학도 못한 채 해군생활 6년과 경찰관 22년으로 우리 가정을 버텨오지 않았느냐.
지난번 고려대에서 만났을 때 7월1일까지 임무를 완수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1백만 학도의 배신자가 된다는 너의 뜻을 아버지는 경찰관이면서도 이해하려 하였다.
다행히 지난번 방송에 네가 나와 북한의 체제를 좋아하지도 않고 김일성이를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단다.
그러나 그같은 너의 생각과는 달리 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김일성이를 도와주는 결과가 되고 너도 모르는 사이에 김일성의 마수에 걸려드는 것 같아 우리 가족은 걱정이란다.
이제는 네가 할 일은 다했으니 남은 길은 너의 어려운 결단뿐이다.
문환아, 너무 두려워할 것도 없다. 현재 너의 주변은 남의 일이기에 쉽게 말하기를「검거되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혈육이지 않느냐.
이 아버지가 진실로 너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너는 잘 알 줄로 믿는다. 잘 생각해보고 이모 집이나 광주 어머니에게 전화부터 해다오.
그리고 네가 스스로 나의 품으로 돌아와 북한 체제를 옹호했다는 세상사람들의 오해만이라도 씻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89년 7월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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