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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최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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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덕수궁 수문장 교대 의식을 끝낸 수문군들이 숭례문 쪽으로 순라하는 장면을 외국인 관광객이 촬영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덕수궁 수문장 교대 의식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주요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시가 지난해 말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청계천, 인사동 축제, 난타 공연 등을 제치고 인기 1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守將(수장)'이라고 적힌 빨간색 깃발을 든 기수가 돌담길을 돌아 나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대한문 광장이 60명의 조선시대 병사로 가득 찬다.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이 시작된 것이다. 수문장을 중심으로 좌우 양편에 2m 길이의 칼을 든 수문군, 기수단, 나발.징.북 등을 연주하는 취라척(군악대.14명) 등이 늘어섰다.

70여 명의 관중 가운데 외국인과 내국인의 비율은 절반 정도씩이다. 이탈리아인 레오나르도(37)는 "복장이 화려하고 행사가 근엄해 보인다"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미국인 애들먼(57)은 "영국 버킹엄궁의 왕실 근위대 교대식을 연상케 한다"며 관심을 표시했다.

?단역배우와 공익요원이 주인공=덕수궁 교대의식 연기는 공연기획사에 소속된 단역배우 32명과 공익근무요원 14명이 맡는다. 연기자의 연령은 23~43세로 TV 드라마나 영화판에서 연기 경력을 쌓은 사람과 초보자가 절반 정도씩 된다. 초보자들은 버스기사나 주경야독하는 야간대생 등 직업이 다양하다.

단역배우의 수입은 하루 5만5000원선. 한 달에 25일(월요일과 비 오는 날 제외) 정도 일할 경우 130만원 정도를 받는다. 이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수문장 유봉호(32)씨는 "오후 4시쯤 일과가 끝나면 바로 편의점으로 달려가 자정까지 일한다"고 했다. 연출을 맡고 있는 신철민씨는 "벌이가 변변치 않아 연기자들은 적당한 일자리가 생기면 이 일을 그만두며, 보통 6개월~1년 정도 일한다"고 말했다.

공익근무요원은 서울시 담당 공무원이 군 부대를 방문해 선발한다. 위엄 있게 보이도록 신장이 175㎝ 이상 돼야 한다. 2~3일 정도 연습하고 곧바로 공연에 투입돼 능장(장대).깃발 등 무거운 장비를 담당하다 고참이 되면 북을 치는 엄고수를 맡는다. 그 뒤에는 공연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 진행요원으로 임무가 바뀐다. 공연이 없는 시간에 덕수궁 일대를 청소하는 것도 이들 공익요원의 몫이다. 공익요원은 한 달에 최고 7만2000원을 받는다.

?"수염 잡아당기지 마세요"=관광객의 장난스러운 행동에 연기자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부동자세로 서 있는데 슬금슬금 다가가 수염을 잡아당기거나 들고 있는 등채(지휘봉)를 빼앗으려는 사람, 마네킹인 줄 알고 여기저기 찔러보는 사람 등 다양하다. 수문장 유씨는 "헛기침을 크게 하거나 굵은 목소리로 '손대지 마시오'라고 말해 쫓는다"고 밝혔다.

공연의 노동 강도도 높은 편이다. 유씨는 "3kg 정도 되는 의상을 입고 10kg 수문장 깃발을 들고 45분간 공연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공익요원인 김정혜(24)씨는 "공연을 마치면 땀이 비 오듯 하는데도 샤워할 곳이 마땅치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기자들은 문화의 전령을 자부하면서 어려움을 이기고 있다. 공익요원 김씨는 "오전 공연을 봤던 관광객이 오후 공연에도 찾아오고 그 다음날 또 오는 경우도 있다"며 "외국인 관광객이나 시민이 좋아하는 것을 보며 피로를 잊는다"고 말했다. 수문장 이동훈(37)씨도 "자부심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역사 공부도 되고 한국을 알린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준봉.이수기 기자<inform@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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