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대서방 외교 성공에 대응| 동구에 「미 이미지」심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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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5, 16일 파리에서 열리는 미국·영국·프랑스·서독·이탈리아·캐나다·일본 등 7개 선진공업국의 경제 정상 회담은 「부시」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첫 국제 경제 무대의 데뷔 장소인 셈이다.
회담은 특히 프랑스 혁명 2백주년과 겹친 시기에 개최됨으로써 해마다 열려온 다른 회담에 비해 화려한 분위기 속에서 열리는 느낌이다.
더구나 「부시」대통령은 경제 정상 회담에 앞서 먼저 9일부터 11일까지 폴란드, 11일부터 12일까지 헝가리 등 2개 동구 국가를 방문함으로써 이번 유럽 방문에 다양성을 마련하고 있다.
흔히 「부시」의 실용적 외교 스타일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그를 창의성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조심스럽다고 특징지어왔다.
그러나 지난 5월말 브뤼셀의 나토 (북대서양 조약기구) 정상회담에서 그가 유럽 주둔 미지상군 20% 감축 등 새로운 감군 안을 제시한 것을 계기로 미 행정부와 언론은 이를 「고르바초프」도 부러워할 외교적 대성공』이라고 말하고 「부시」가 드디어 서방 지도자의 자리에 들어섰다』는 등 칭송을 늘어 놓았다. 이번 유럽방문은 그 속편으로 마련된 느낌이다.
「부시」대통령은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 나라 모두 소련의 영향력을 줄이고 서방세계의 접근을 적극 모색해온 사실로 볼 때 「부시」방문은 이에 대한 공식지지 표명인 셈이다. 더구나 양국 모두 경제난을 안고 있어 미국 등으로부터의 해결을 기대하고있는 것이다.
특히 폴란드는 외채 문제가 심각한 형편이다. 노조 지도자로부터 정치 지도자로 변신한 「레흐·바웬사」는 최근 「미테랑」프랑스 대통량에게 구원을 요청하면서 외채 해결을 위해 3년간 1백억달러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부시」의 폴란드 방문을「상징적」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폴란드 민주화 움직임에 대한 지지의 상징으로 취해지는 방문이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마술 지팡이를 가져 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은 폴란드에 대해 이미 70년대에도 적지 않은 차관을 제공한 바 있지만 폴란드 외채는 계속 악화, 현재 그 규모가 3백9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과거의 전철을 밟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가 구상하는 구제책은 미국 단독 지원이 아니라 서방의 공동 구제 노력이다. 이번 파리 경제 정상 회담에서 공동 재정 지원 방안을 선도할 것으로 예상되고있다.
헝가리도 플란드 만큼 심각하지는 않더라도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부시」에게 요청할 것으로 미측은 파악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중국 등에 제공하고 있는 무역상 최혜국 대우를 요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지난 6월 서독에 이어 최근 프랑스를 방문해 서구를 매료시키고 있는 것을 감안할때 이번 「부시」의 폴란드·헝가리 방문은 굳이 라이벌 경쟁이라고 보지않더라도 공산 동구에 대한 일종의 돌파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효과를 감안할 때 미국으로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들에 대한 지원의 손길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파리 경제 정상 회담자체는 중대한 흥정이나 거래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피 경제 정상 회담은 70년대와 달리 80년대에 들어와서는 근본 문제들에 대한 실질적인 진전을 모색한다기 보다는 세계 정치 지도자들의 국제 무대 진출의 계기로 활용되고 있는 느낌이다.
더구나 현재 세계 경제는7년째 성장을 지속하고 있고 미국도 달러화 및 이자율의 하향세가 유지되고있어 지난한 과제들은 많이 없어진 셈이다.
그런대로 논란이 예상되는 의제로 제3세계 외채 처리 문제·미 달러화 및 무역 적자 문제· 인플레 대책, 그리고 이 회담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의제인 환경 오염 문제 등이다.
미국은 제3세계 외채 문제에 관해 종전까지는 탕감을 주장하는 유럽과 달리 지불 연기라는 소극적 자세를 취해왔다. 「부시」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일부 국가들에 대한 탕감책을 밝히고 있어 회담의 외채문제 논의가 다소 쉬워진 셈이다.
그러나 무역 문제에 관해「부시」는 외롭게 수세 입장에 몰릴 것이다. 보호 무역 정책에 대한 공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통상법 301조로 일본·인도·브라질을 보복 대상에 올리는 등의 보호 정책에 대해 회원국은 공동 코뮈니케를 통한 비판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달 선진국 OECD회의도 미 통상법을 맹렬히 공격한바 있고 GATT도 「엄중한 심판」을 다짐하는 보고서를 내놓는 등 미 보호주의에 대한 국제적 분위기가 몹시 부정적이다. 【워싱턴=한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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