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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나 알지요 ? 알지요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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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집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웬 낯선 사람이 필자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한참 쳐다본다. 다소 민망하기도 했지만 퇴임 이후 종종 겪던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성큼 다가와 코앞에 얼굴을 대고 하는 말, "나 알지요?, 알지요?"

나를 알아봐서 그러려니 하는 쪽으로만 생각했던 필자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곧 자괴감이 이어졌다. 각자가 자기중심적인 것을….

지난 2년 동안 나랏일을 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집단적인 것 같으면서도 유난히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이다. 개인은 개인대로, 집단은 집단대로 각자 자기가 제일이다. 그러기에 개인 민원을 해결하는 일도, 집단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도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다. 끈질긴 민원인은 물론 웬만한 조직이면 모두가 장관 이상만을 상대하고자 하는 것도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더욱 꼬이고 어렵게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이익집단의 대내외적 충돌의 배후에는 왕왕 집단만이 아니라 개인 간의 기(氣)싸움이 자리하고 있는 까닭에 우리의 사회 갈등은 자주, 그리고 극렬하게 표출되고 오래 끄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듯 이해(利害)는 물론 의견이 다를 때 먼저 외치고 붙고 보자는 '전략'과 끝까지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가 정착되다시피 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런 말을 하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획일적 통제와 억압에 대한 사회적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엄존(嚴存)하는 문제와 갈등의 표출을 공권력으로 누르고 언론도 대부분 침묵하는 상황에서 결사(決死)의 투쟁과 각오 외의 다른 방식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사항쟁의 정신이 이후 민주화를 위한 투쟁 동력의 주요 원천이었음을 부인해서도 안 될 것이다. 원인도, 책임도 공권력에 있었고 따라서 공격 대상도 비민주적 정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특히 현재 시점까지 이러한 타성(惰性)이 이어지고 보기에 따라서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과거와는 다른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지난날의 저항투쟁이 '인정투쟁(struggle for recognition)'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민주화 투쟁에도 인정(認定)투쟁의 요소가 없지 않았지만 최근 거의 모든 사회 갈등을 대정부 투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데는 인정투쟁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등을 키우고 격렬하게 표출해야만 알아주고, 특히 권력자가 알아준다는 생각도 깔려있는 듯하다.

인정투쟁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헤겔이 설파한 대로 인류 역사는 인정투쟁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자기중심 내지는 자기제일주의의 인정 '투쟁' 아닌 인정 '투정'이다.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개인과 단체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강한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월드컵 열기, 무수히 많은 조직과 단체, 그리고 정치인마다 외치는 사회 통합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때문에 우리 사회가 위태로운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다.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말을 남기고 버스에 올랐다. "나 알지요?, 알지요?" 하고 다그치듯 묻는 대신 "우리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닌가요?"라고만 했더라도 다음 버스를 기다릴 수 있었을 텐데.

◆약력=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인하대 경상대학장,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정책기획위 경제노동분과 위원장, 노사정위 공공특위 위원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노동부 장관 역임

김대환 인하대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