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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등 발암물질, DNA에 ‘지문’ 남긴다...암 원인 추적한다

중앙일보

입력

특정 환경 요인이 돌연변이를 일으킬 경우 DNA에 원인을 특정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포토]

특정 환경 요인이 돌연변이를 일으킬 경우 DNA에 원인을 특정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포토]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자외선·흡연 등이 DNA에 ‘지문’과 같은 고유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간 폐암 환자의 종양을 보고 (역으로) 그것이 담배 때문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DNA에 새겨진 흔적을 보고 원인을 추적할 수 있게 됐다. 향후 암 치료와 예방에 구체적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찬 분당차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의 말이다. 환자의 개별 종양을 보고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킹스컬리지런던 공동연구진은 16일(현지시각) 이같은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해당 논문을 국제학술지 ‘셀(Cell)’에 게재했다. 마치 법의학자들이 범인을 찾듯, DNA에 새겨진 흔적을 보고 암 유발 인자를 추적할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등 공동연구진 #DNA 속 발암물질 고유 흔적 확인 #자외선·대기오염 등 총 41개 물질 #“범죄자 추적 가능한 단서 생긴 것”

인간 줄기세포를 대기오염 물질이나 담배연기 등 잠재적 발암물질에 노출시켰더니 돌연변이가 발생, DNA에 뚜렷한 흔적이 남았다. [사진 PIXABAY]

인간 줄기세포를 대기오염 물질이나 담배연기 등 잠재적 발암물질에 노출시켰더니 돌연변이가 발생, DNA에 뚜렷한 흔적이 남았다. [사진 PIXABAY]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국 암연구소(Cancer Research UK)’의 통계를 인용해 “영국인 2명 중 1명은 살면서 한 번은 암에 걸린다”며 해당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의 경우도 국민 3명 중 1명 이상은 일생에 한 번 암에 걸리는 것으로 보고돼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협으로 꼽힌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수명인 82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2%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그간 환자가 노출된 어떤 환경이 암을 유발하는 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연구진은 이를 알아내기 위해 일상 속에서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되는 물질 총 79개를 인간의 줄기세포에 노출시켰다. 그 중에는 담배연기·자외선·알코올·대기오염 물질 등도 포함됐다. 연구 결과 그 중 52%에 해당하는 41개의 환경 인자가 DNA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하나 이상의 뚜렷한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후 줄기세포에 새겨진 돌연변이 및 그 흔적과 실제 암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를 대조했고, 두 개가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담배 연기와 자외선(UV)의 경우 실제 암 환자에게서 발생한 돌연변이와 줄기세포에서 발생한 돌연변이가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진 연합뉴스]

담배 연기와 자외선(UV)의 경우 실제 암 환자에게서 발생한 돌연변이와 줄기세포에서 발생한 돌연변이가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진 연합뉴스]

실제로 연구진이 담배 연기에 고의적으로 노출시킨 줄기세포에서는 폐암에서 발생한 돌연변이와 비슷한 패턴의 돌연변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찬 교수는 “DNA 손상은 일상적으로도 생기지만 이것이 과도하게 발생, 축적되면 돌연변이를 통해 암 세포로 변하게 된다”며 “그간 짐작만 해왔던 흡연·자외선 등 일상적 요인이 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지 알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인간의 유전자를 단 하루 만에 분석할 수 있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신기술이 발달해 DNA 내 돌연변이 흔적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며 “향후 줄기세포 뿐 아니라 점막·피부 세포 등 여러 세포를 대상으로 해당 연구 범위를 넓혀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 연구자인 데이비드 필립스 영국 킹스컬리지런던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환경적 요인에 의해 DNA가 어떻게 손상되는지 그 패턴을 망라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구를 진행한 세레나 닉-자이널 영국 케임브리지대 분자생물학 연구소 박사는 “환경적 요인이 DNA에 남기는 흔적을 참고 자료로 만들어 놓으면, 향후 의사들이 이를 인용해 암을 유발한 요인이 무엇인지 진단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잠재적 발암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예방 하는 데도 해당 연구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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