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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스파이 혐의 재판받던 日 기업, 한국서 철수하며 법원 탓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반도체 관련 기업인 페로텍이 한국시장에서 철수한다는 보도가 담긴 NHK 뉴스 홈페이지 화면. [NHK 홈페이지 캡처]

일본 반도체 관련 기업인 페로텍이 한국시장에서 철수한다는 보도가 담긴 NHK 뉴스 홈페이지 화면. [NHK 홈페이지 캡처]

산업스파이 혐의로 재판을 받던 일본 기업이 한국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사법부 독립성을 빌미로 삼아 논란이 일고 있다. NHK는 “도쿄(東京)에 본사를 둔 반도체 관련 업체 ‘페로텍홀딩스’가 한국에서의 사법판단에 대한 우려로 인해 (한국)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다”고 17일 보도했다.

NHK "징용 재판 잇따르는 가운데 철수" 보도 #페로텍코리아, 韓 업체 기술 훔친 혐의로 재판중 #7년간 연구·개발 끝에 확보한 독자기술 #日 언론에 "사법 독립성 담보 안 된다" 주장

페로텍의 자회사인 페로텍어드밴스드머티리얼즈코리아와 전직 직원 3명은 한국 기업의 기술을 무단으로 빼돌린 혐의로 지난 2월 검찰에 기소돼 현재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한국 법인(경기도 의왕 소재)을 세운 페로텍은 2015년 12월 국내 반도체 부품 회사인 티씨케이의 직원 2명을 스카우트했다. 뒤이어 티씨케이의 협력업체 현장소장 겸 설계팀장 1명도 채용했다. 티씨케이는 반도체칩 절삭 과정에 필요한 실리콘 카바이드 링 제조업체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다.

이후 페로텍은 2017년 3월 충남 당진에 실리콘 카바이드 링 생산공장을 세웠다. 페로텍 측은 공장 설립 과정에서 충남도와 당진시로부터 각 25억원씩 총 50억원을 지원받는 협약도 체결했다. 실제로 10억원이 넘는 지원금이 이미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한국시장 철수를 선언한 페로텍의 한국법인 홈페이지 화면. [페로텍코리아 홈페이지 캡처]

지난 15일 한국시장 철수를 선언한 페로텍의 한국법인 홈페이지 화면. [페로텍코리아 홈페이지 캡처]

페로텍의 움직임을 수상히 여기던 티씨케이는 페로텍 측이 자사 도면을 쓰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이 페로텍코리아를 압수수색한 결과 의심갈 만한 물증들이 여럿 확보됐다. 경찰에 따르면 그 중에는 티씨케이의 로고가 들어간 설계도도 있었다. 설계도에 담긴 기술은 티씨케이가 6년간 연구·개발한 끝에 얻은 독자 기술이었다.

경찰은 산업스파이 사건으로 결론 내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티씨케이는 최근 페로텍코리아를 상대로 민사소송도 제기한 상황이다. 재판 과정에서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났다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지난 15일 일본의 페로텍 본사는 한국시장 철수를 선언했다. 페로텍 측은 NHK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의 일본계 기업에 대한 사법 판단에 대해서 사법의 독립성이 완전히 담보되지 않는 유감이 있다”며 “잠재적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페로텍의 한국사업 철수와 관련해 NHK는 “한국에서 지난해 10월 이후 태평양전쟁 중 ‘징용’을 둘러싼 문제로 일본기업에 배상을 명령하는 판결이 잇따르는 가운데 사법 판단에 대한 우려가 (한국 내 일본기업의) 사업 지속에 영향을 주는 형태가 됐다”고 해설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사안에 대해 “우선 한국 내 개별 소송에 대해선 정부로서 코멘트를 삼가겠다”면서도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에 대해선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가 협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고, 더욱이 (징용 피해) 원고 측에 의한 압류 움직임도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본기업의 정당한 경제활동을 보호하는 관점에서도 계속해서 관련 기업과 긴밀히 연대하면서 일본 정부로서도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강제 징용 문제 관련 기업들이 우리 법원의 판결을 놓고 한국사업 지속 문제를 우려하는 것은 사실이나, 관련 소송과 무관한 기업이 그런 이유를 드는 것은 견강부회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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