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디스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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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치 권력은 외부적 힘으로 국민의 생각과 행태를 조종할 수 있지만 문화는 국민 스스로의 마음에 파고들어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와 행태를 유도해내는 힘을 갖고있다.
나치 독일의 선전상으로 악명 높았던 「괴벨스」는 그런 문화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던 듯 『나는 누가 「문화」 라는 말만 하면 총을 빼들고 방어자세를 취한다』는 말을 남겼다.
최근 평양에서 열린 「청년 축전」이 끝나던 날, 이 행사에 참가했던 2만여 외국인들은 평양 교외에 마련된 야외 디스코장에서 서양 팝 음악에 맞추어 춤을 췄다고 한다.
이 조그마한 「문화행사」를 놓고 북한과 동구 공산권 출신의 청년들이 보인 대조적 반응은 흥미롭다. 북한 청년들이 같이 춤추기를 거부하면서 보고만 서 있는걸 보고 디스크 자키를 맡은 한 체코 청년은『저들은 함께 춤추는데도 지시가 내려와야 되는 모양』이라고 꼬집었고, 한 북한 청년은 『어떻게 체코인이 원수 미국 놈의 음악을 틀 수 있는가』라고 분개했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북한의 엄격한 사회통제가 같은 공산권으로부터 조차 북한 젊은이들을 얼마만큼 소외시켜 놓았는지를 보여 준다. 동시에 이 조그마한 문화의 충격이 앞으로 북한 사회의 개방과 변화의 가능성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최근 북한은 폐쇄 사회 속에서 권력자들이 키워온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이념을 개방사회인 남한에 전파하러 광분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남한의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런 움직임에 호응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공산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배경을 보면 북한 권력자들의 그런 기도는 주객전도된 짓이다. 동구권에서 일고 있는 변화는 전후 오랜 세월을 두고 서방세계가 철의 장막 너머로 띄워보낸 문화적 충격의 한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방세계의 보도를 듣고서야 자신들의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 수 있었던 동구의 젊은이들, 블루진을 입고 로큰롤 음악 속에 서방 전위 미술을 감상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꽁꽁 묶인 관제 문화의 숨막히는 굴레로부터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던 철의 장막 저쪽의 젊은 세대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그런 「의식화된」젊은 세대의 활력을 체제 안으로 흡수해 체제 자체의 화석화를 막아보려는 몸부림이라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체제 내부의 경직성은 북한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다른 점은 북한이 동구권보다 훨씬 철저하게 젊은 세대의 눈과 귀를 외부로부터 차단할 수 있었다는데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볼 때 「평양축전」은 긍정적 측면을 갖고 있다. 평양의 밤하늘에 울려 퍼진 로큰롤 음악의 리듬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자나깨나 「어버이 수령」에 대한 존경심과 주체사상의 어록을 좔좔 외우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충격을 북한 젊은이들 마음속에 심어줬을 수도 있다.
그런 전제에서 우리의 대북 접근은 요즘의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개방요구로 돌아서야 된다고 본다.
서방 세계가 공산 세계에 대해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요구하면서 공존의 바탕을 삼은 헬싱키 선언과 같은 합의를 우리도 북에 대해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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