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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다 노래하지만 많이 아파”…세월호 엄마들의 세번째 연극

중앙일보

입력

연극배우 된 세월호 어머니들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공연 모습. 세월호 희생 학생, 생존 학생 어머니들이 연기하고 있다. [사진 노란리본 제공]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공연 모습. 세월호 희생 학생, 생존 학생 어머니들이 연기하고 있다. [사진 노란리본 제공]

“매일 해~가 지는 동네 안~산. 별이 뜨~면 꿈을 꾸지요~. 그러니~까 괜~찮아. 우리는 아프지 않아. 아~프~지~않~아.” (연극 장기자랑 삽입곡 ‘매일 해가 지는 동네’ 중에서)

15일 오후 2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배우들의 연극 연습이 한창이었다. '노란리본'은 세월호 희생 학생 어머니와 생존 학생 어머니 6명으로 구성된 극단이다.

어머니 배우들은 세월호 참사 5주기 행사에 참여하느라 지친 기색이었지만 대사를 뱉는 목소리는 힘찼다. 요즘 유행하는 가요에 맞춰 칼군무도 척척 해냈다. 이들은 마지막 노래를 합창하며 연습을 끝내고 박수로 서로를 격려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안산 가족협의회에서 '노란리본' 배우들이 세 번째 작품 '장기자랑' 공연을 연습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세월호 참사 5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안산 가족협의회에서 '노란리본' 배우들이 세 번째 작품 '장기자랑' 공연을 연습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노란리본'은 김태현 감독(문화예술단체 컬처75 대표)의 연출로 ‘그와 그녀의 옷장(2016)’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2017)’ ‘장기자랑(2019)’ 등 세 작품을 선보였다. 공연 제작비는 안산의 트라우마센터인 ‘온마음 센터’가 지원한다. 연극과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던 이들이 이제까지 무대에 오른 횟수는 100회 이상이다.

현재 활동하는 배우는 세월호 사고로 숨진 단원고 학생 동수군의 엄마 김도현씨와 수인 엄마 김명임씨, 예진 엄마 박유신씨, 영만 엄마 이미경씨, 순범 엄마 최지영씨, 그리고 생존 학생 애진 엄마 김순덕씨 등 6명이다.

세월호 희생 학생 전기 참고해 대본 써 

희생 학생의 어머니들은 “희생된 아이들, 생존한 아이들 모두 우리 아이들”이라며 스태프라도 하겠다는 김순덕씨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지난 5·6일 초연한 장기자랑은 2014년 단원고 학생들이 제주도 수학여행을 앞두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담았다. 변효진 작가는 세월호 희생 학생의 전기인 '4·16 단원고 약전(略傳)'을 참고해 사실적으로 대본을 썼다.

웃으며 연습에 임하던 김도현씨가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낮게 신음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5년 전 오늘 이 시간, 아이들이 배 타러 가려고 모였을 때라고 생각하니 울컥했다”는 김씨 눈에 금세 눈물이 맺혔다.

김씨의 대본 한쪽에는“연극하면서 주변 치유. 연습하면서 보란 듯이 웃을 수…, 눈치 보지 않고”라는 문구가 씌여 있었다. 김씨는 “겉으로 웃지만 속으로 너무 아프다”면서도 “우리 아이들을 소개하는 연극이니 예쁜 모습으로 공연하려고 한다”고 울음을 삼켰다.

아이들 이름 석자를 입 밖에 내는 것도 힘들어한 이들이지만 공연하며 “많은 사람이 우리 아이들을 예쁘고 귀하게 여겨주는구나” 싶어 마음을 열게 됐다고 한다.

동수 엄마 김도현씨의 대본. '장기자랑' 초연 전까지 매주 6일 동안 연습했다. 최은경 기자

동수 엄마 김도현씨의 대본. '장기자랑' 초연 전까지 매주 6일 동안 연습했다. 최은경 기자

'노란리본'을 창단한 것은 2016년 3월이다. 이보다 앞선 2015년 10월 마음을 달래려 커피 공방에서 함께 수업을 듣던 어머니들은 강사에게 연극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를 들은 김태현 감독이 연극 대본 읽기 모임을 만들었고 지금의 '노란리본'이 됐다.

화려한 리액션으로 연습을 이끌던 김 감독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성찰할 것이 무엇인지 나누기 위해 공연한다”며 “어머니들이 교복을 입고 공연하는 것이 너무 아픈 일임을 알기 때문에 밝은 분위기를 내려 한다”고 말했다.

2016년 10월 '노란리본'이 첫 공연을 했을 때 관객들은 놀랐다. 어머니들의 ‘굳건한’ 코미디 연기에 오히려 힘을 받고 간다는 관객이 많았다. 장기자랑 공연 때 역시 시종일관 웃음이 넘치지만 ‘아, 저 아이들이 없구나. 저 배우가 아이가 아니라 엄마구나’를 깨닫는 순간 관객들은 눈물을 흘린단다.

"엄마들 노력 보며 자랑스러워할 것" 

'노란리본' 배우들이 아이들의 부재를 매 순간 직면하면서도 연극을 계속하는 것은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는 데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진심으로 울고 웃으며 삶의 동력을 얻기도 한다. 이미경씨는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주목받아야 할 사람은 아이들인데 엄마들이 대신해 죄스럽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우리를 보면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 장기자랑은 현실과 다르게 학생들이 제주도에 무사히 도착해 춤추며 노래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씨는 “마지막 노래 가사에서 아프지 않다고 하지만 사실은 많이 아프다”며 “언젠가 아들 영만이를 다시 만나면 정말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울먹였다.

안산=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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