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중 신생아 떨어뜨린뒤 숨졌는데···'병사' 처리한 대학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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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수사대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외관. [사진=뉴스1]

광역수사대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외관. [사진=뉴스1]

분만 과정에서 신생아를 바닥에 떨어뜨린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의료진이 경찰에 입건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4일 “경기도 성남시의 한 대학병원 의료진 등 병원 관계자 9명을 업무상 과실치상‧증거인멸 등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해당 병원에서 2016년 8월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신생아를 옮기던 의사 A씨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신생아의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29주에 태어난 미숙아였던 아기는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8시간 뒤 숨졌다.

그러나 의료진은 아기가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 의료진은 “정상 신생아의 1/3에 불과한 몸무게일 정도로 작은 아기가 갑자기 조산으로 태어나면서 상태가 좋지 않았고, 머리 충돌이 아기의 사망 원인과는 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기의 초음파 사진에서 두개골 골절 흔적과 출혈 흔적을 확인했다”며 “하지만 사망진단서에는 단순 병사로만 기재해 의도적으로 과실을 숨겼는지를 수사 중이다”고 밝혔다. 경찰은 “아이가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사실이 아기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기 위해서는 부검을 했어야 하는데 부검이 되지 않았다”며 “부모에게 왜 알리지 않았는지, 차후에라도 알릴 시간이 있었는데 왜 알리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여러 차례 병원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경찰은 아기의 의료기록 일부가 지워진 사실도 확인했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던 의료진이 5명이 넘는데도 2년간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조직적 은폐' 의혹이 있는지도 수사하고 있다.

병원 측은 "수사가 시작된 뒤 사고를 알게 됐고, 부모에게 연락을 드리고 '사망 원인과 상관 없이, 사고를 말씀드리지 않은 건 의료진의 판단 잘못이었다'고 사과 드렸다"고 설명했다. 당시 병원 운영을 총괄했던 장모 부원장은 상황을 보고받았으나 병원장 등에 알리지 않은 사실이 확인돼 보직을 해임했다고도 밝혔다.

지난해 7월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현재 수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라며 “의학적으로 병사가 맞았어도, 아이를 떨어뜨린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부분 등에 대해 ‘증거인멸’, 아이를 떨어뜨린 행위 자체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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