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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영화감독이 마지막 다큐에 담은 아름다운 치유의 선율

중앙일보

입력

뷰티플 마인드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단원인 10살 김건호 군이 보이지 않는 눈 대신 손끝으로 악기의 떨림을 느끼고 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뷰티플 마인드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단원인 10살 김건호 군이 보이지 않는 눈 대신 손끝으로 악기의 떨림을 느끼고 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눈이 보이지 않는 건호는 피아노 선율을 손끝으로 기억한다. 발달 장애가 있는 환이의 클래식 기타는 힘이 넘친다. 눈 대신 손으로 점자 악보를 읽는 민주의 첼로는 감미롭고 풍성하다. 이들의 연주를 하나로 만드는 건 지휘자 선생님의 이런 격려다. “마음에, 그 소리 있지?”

18일 개봉 다큐 '뷰티플 마인드' #장애·실력차 음악으로 뛰어넘은 #동명 자선 오케스트라 사연 그려 #류장하 감독 첫 다큐이자 유고작

1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뷰티플 마인드’는 10대부터 30대까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진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음악과 사연을 이처럼 담담하게 비춘다. 다큐 제목은 이 오케스트라 이름 그대로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주위 시선에 상처받고 눈물을 삼킨 부모들의 속내도 나오지만, 함께 공연을 준비하며 음악이 주는 순수한 행복에 젖어 드는 단원들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특히 초중고생 단원들은 수줍게 엄마 품을 파고들고, 친구들과 재잘대는 모습이 딱 그 또래 같다. 그런 경쾌한 일상 덕일까. 시간이 갈수록 무르익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이들의 진심처럼 따뜻하게 다가온다.

다큐멘터리 '뷰티플 마인드'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은 이영숙 선생님의 입버릇은 "마음에, 그 소리 있지?"다. 저마다 신체 조건, 실력이 다른 단원들을 배려한 말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다큐멘터리 '뷰티플 마인드'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은 이영숙 선생님의 입버릇은 "마음에, 그 소리 있지?"다. 저마다 신체 조건, 실력이 다른 단원들을 배려한 말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음악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 감독 유고작

이 다큐를 연출한 사람은 최민식 주연의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2004)에서 한물간 트럼펫 연주자와 가난한 탄광촌 아이들의 오케스트라를 뭉클하게 그렸던 류장하 감독. 지난해 2월부터 반년여 동안 완성한 이번 다큐는 그가 올해 2월 암으로 작고하며 유작이 됐다. 공동연출을 맡은 손미 감독은 시사 이후 간담회에서 “류 감독님은 촬영 당시에도 몸이 아팠지만 친구들의 음악이 항상 ‘힐링’이라며 기뻐하셨다”고 돌이켰다.

류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한 조성우 음악감독은 ‘꽃피는 봄이 오면’을 함께했던 사이. 이번 다큐의 제작과 음악도 맡았다. 그는 “2년 전 친구의 소개로 아이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악보도 볼 수 없는 아이가 어쩌면 저렇게 풍성한 감성으로 연주할까. 악기 훈련 과정에서 소통의 다름이 있을 뿐이지, 음악의 본질은 같았다”며 “음악을 직업으로 하며 매너리즘에 빠졌던 제가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을 더 넓은 세상과 만나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첼리스트 김민주 양이 점자 악보를 읽는 모습. 곡을 익히는 데 남들보다 서너 배 시간이 필요하지만, 누구보다 감미로운 연주실력을 지녔다.[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첼리스트 김민주 양이 점자 악보를 읽는 모습. 곡을 익히는 데 남들보다 서너 배 시간이 필요하지만, 누구보다 감미로운 연주실력을 지녔다.[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안 보이는 눈 대신 손끝으로 첼로 떨림 느껴

음악 자체도 귀가 즐겁다. 4년 전 여섯 살 나이로 최연소 입단한 김건호 군은 시각장애 1급이자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이다. 눈을 감은 채 첼로와 교감하고 기타 튜닝도 해낸다. 우아하게 귀에 감기는 첼로 솜씨의 김민주 양은 시각장애인 최초로 서울예고를 거쳐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이 오케스트라에 가장 오래 몸담아온 발달장애우 조현성 군은 실력향상은 더뎌도 누구보다 흥 넘치게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이런 모습 하나하나가 뭉클하고 유쾌하다. 이 다큐가 지난해 제천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단원들은 영화제 관객들 앞에서 공연도 펼쳤다.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의림지 호숫가에서 야외공연을 가진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 연주 모습. [사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의림지 호숫가에서 야외공연을 가진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 연주 모습. [사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장애·실력 달라도 다 같이 하는 데 의미 있다"

“처음엔 그냥 장애우니까 동정심으로 끝나는 영화 아닐까 걱정했는데 감독님이 진심으로 먼저 다가와 주셔서 촬영하며 또 하나의 추억이 생겼어요” 간담회에 나선 시각장애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진 양의 말이다.

손미 감독은 “장애 여부를 떠나 음악적 수준 차이가 있다. 보통 오케스트라들은 비슷한 실력끼리 모이는데 이 친구들은 아주 잘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 계속 기다려줘야 하는 친구도 있다”면서 “그 과정을 다같이 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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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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