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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혁 칼럼] 대통령 비서들의 處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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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 자신이 훌륭해야 하지만 좋은 참모진도 꼭 필요하다. 평범한 사람인데도 좋은 참모들을 활용해 훌륭한 대통령이 된 사례도 많다. 따지고 보면 어떤 참모를 쓰느냐가 대통령의 능력이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처지가 더 어려워진 것 같아 안타깝다. 행자부 장관이 국회의 해임건의로 바뀐 데 이어 이번에는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대통령 지지도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국회 내의 친여(親與) 세력은 왜소하기 짝이 없다.

*** 대통령 '적절한 보호' 받고 있나

그렇다면 이런 곤경에 이르기까지 盧대통령은 그렇다치고 청와대비서실은 뭘 하고 있었나. 비서실이 좀더 잘했던들, 좀더 유능한 참모가 있었던들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령 지난번 태풍 상륙 때 盧대통령의 공연관람이 구설에 올라 사과까지 했는데 이런 일만 해도 제 역할만 똑똑히 하는 비서가 있었던들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대통령님, 태풍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라는 메모 한 장, 보고 한마디가 공연장에 전달됐더라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일뿐만 이니다. 청와대에 과연 전략가가 있는지, 전략적 사고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일이 줄곧 이어지고 있다. 감사원장 임명동의안만 해도 미리 표분석을 하고 위험요소와 통과대책 등을 당연히 따져봤어야 했을 일이었다. 더구나 민주당 분당으로 국회 내 반감세력이 확대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고작 대통령의 하루 전 기자회견과 참모들의 각당 대표에 대한 전화뿐이었다고 한다. 왜 대통령이 직접 각당 지도자들을 만나고 설득하게 하지 못했는가. 왜 참모들은 부결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했는가. 이런 전략 부재(不在)의 결과에 대해 비서실의 누가 어떤 책임을 지는가. 그냥 넘어가는가.

그동안 盧정부는 끊임없이 정책혼선이니, 우왕좌왕이니 하는 비판을 들어 왔다. 그렇다면 비서실은 더 이상 그런 비판이 나오지 않게 할 무슨 몸부림이라도 쳐야 할 게 아닌가.

해당 부처를 조지든가, 새로운 대응방안을 대통령에게 건의한다든가 무엇이든 상황을 바꿀 조치를 취하는 것이 참모의 할 일이다. 그러나 정책혼선은 혼선대로, 비판은 비판대로 그냥 계속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그런 일로 누가 사표를 냈다는 말도 없으니 이런 비서실에 무슨 전략이 있는가.

비서실의 1차적 과제는 대통령을 보호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지 않게, 인기가 떨어지지 않게 보좌.관리하는 일이다. 盧대통령은 이런 보호를 받고 있을까. 밖에서 보기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런 비서실의 보호기능이 작동되고 있다면 예컨대 盧대통령이 자신의 막말로 인한 고생을 그렇게 오래, 자주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서실이 대통령의 용어를 가다듬고 만날 사람과 행사에 따라 적절한 보좌를 했던들 盧대통령은 여론의 매를 훨씬 덜 맞았을 것이다. 거꾸로 비서실이 특정 신문 취재 거부니 하는 소리로 오히려 시빗거리를 만드니 대통령을 보호하는지, 손해를 입히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리고 盧대통령의 비서실은 대체로 말이 많고 너무 나서는 경향이다. 역대 정권에서 지금처럼 비서들이 뉴스에 자주 나오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 말이 많고 너무 나서는 비서들

과거 9년3개월이나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金正濂)씨는 공보수석을 제외하고는 자기나 다른 비서가 재임 중 기자회견과 외부 강의를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청와대 근무를 표시하는 명함 사용도 금지했고 청와대 봉투.용지의 유출도 막았다고 한다.

그의 방식이 꼭 정답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비서의 말은 흔히 대통령의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비서의 말조심은 당연하다. 또 비서가 몸조심하고 뒤에 있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요즘 보면 비서들의 공개활동이 왕성하다. 부처가 해야 할 정책설명을 비서실이 하는 일이 잦다. 개인 의견 제시도 많다. 이라크 파병을 놓고 같은 비서실 안에서 '취중 반대'와 공개적 지지가 맞서는가 하면 위도에 대통령 별장을 짓자는 개인 의견을 관련 부처에 내놓아 정부 방침처럼 발표되기까지 했다. 어려움에 처한 盧대통령에게 보좌 기능의 개선은 시급한 과제다.

송진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