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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인인사이트] 느리고 소박한 도시 포틀랜드, 아마존에 인센티브 대신 건낸 제안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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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제2 본사 유치전은 말 그대로 전쟁 같았습니다. 지난 2017년 9월, 아마존은 “시애틀 본사와 동등한 제2 본사를 북미에 설립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50억 달러(5조7000억원)의 투자, 5만개의 일자리도 공언했죠. 한달 간의 유치 지원 기간 동안 무료 미국의 238개 도시에서 제안서를 제출했다고 하네요. 시장이 직접 아마존에서 1000개에 가까운 물건을 사고 쇼핑리스트 평점을 매긴 도시도 있었습니다.

일본의 브랜드 컨설팅 업체 아키네틱스 대표이자, 도시 매거진 메자닌(MEZZANINE)의 편집장인 스이타 료헤이는 제안서를 낸 238개 도시 중에서 포틀랜드를 주목했습니다. 지난 가을 열린 폴인의 컨퍼런스 <시티체인저 2018: 밀레니얼의 도시>에서 ‘스타트업 도시’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맡은 그는 포틀랜드가 아마존에 건넨, 다소 색다른 제안을 소개합니다.

포틀랜드는 느리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도시로 유명합니다. [중앙포토]

포틀랜드는 느리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도시로 유명합니다. [중앙포토]

“우리는 인센티브를 주지 않겠다. 포틀랜드는 여러 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고, 아마존에는 현명한 사원들이 많으니 그들의 지혜를 빌려서 포틀랜드가 가진 과제를 함께 해결해보자.”

유치전의 승자가 된 뉴욕 롱아일랜드 시티와 버지니아주 얼링턴의 내셔널랜딩이 각각 30억 달러(3조4000억원)와 6억 달러(6800억원)의 인센티브를 내걸었던 걸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제안입니다. 엄청난 혜택을 제공한다 해도 유치를 장담할 수 없는 데 말이지요.

하지만 포틀랜드의 제안은 오늘날의 도시가 직면한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포틀랜드는 아마존과 투자 계약의 당사자로만 남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아마존에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도시를 함께 구성하자"고 역제안한 것이지요. 포틀랜드의 한 여성은 뉴욕 타임즈에 이렇게 기고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마존 제2 본사를 유치했던 뉴욕 롱아일랜드시티는 급격한 물가 상승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지역 정치인의 훼방에 반발해 아마존은 뉴욕 본사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사진 폴인]

실제로 아마존 제2 본사를 유치했던 뉴욕 롱아일랜드시티는 급격한 물가 상승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지역 정치인의 훼방에 반발해 아마존은 뉴욕 본사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사진 폴인]

“아마존의 새로운 본사는 달의 뒤쪽, 남극 에이트켄 분지에 세울 것을 제안한다. 직경이 1600마일로 충분히 넓고, 월마트와 셰어도 가능하다. 이 두 회사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이 지역은 다시 한번 작고 멋진 로컬 책방이나 가게들이 생길 것이다. 지역경제도 좋아질 것이며, 우리들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아마존의 발전이 포틀랜드의 주민과 골목의 상인에게 도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포틀랜드는 묻고 있는 것입니다. 소박하고 자연 친화적인 삶으로 유명한 포틀랜드와 굉장히 어울리는 질문이죠. 이쯤 되면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성장의 과실을 지역 공동체 내 다양한 구성원들이 공유하면서 상생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프루이트 아이고와 압구정 현대의 차이 

컨퍼런스 <시티체인저 2018: 밀레니얼의 도시>에서 기조 연설을 맡은 유현준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는 아파트를 통해 도시의 공유 가능성을 살펴봅니다. 지난 195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대규모 공공 주택단지, 말하자면 아파트 단지인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에 사람들이 입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도시관계자들은 인구가 늘면서 이와 같은 아파트 단지가 더 필요할 거라고 예상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놀랍게도 3년 만에 이 지역은 슬럼화됐습니다. 마약 밀수는 물론 살인사건까지 일어나면서 1976년까지 아파트를 단계적으로 철거했습니다.

&#39;프루이트 아이고&#39;의 모습. [사진 유현준]

&#39;프루이트 아이고&#39;의 모습. [사진 유현준]

반면 한국에서 아파트는 ‘내 집 마련’이라는 욕망의 대상이자 압구정동 등 특정 지역의 아파트는 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건축양식도 같고 공간구조도 비슷하지만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외면을 받은 반면 다른 쪽에서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이와 같은 극명한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유 교수는 ‘소유’와 ‘임대’의 차이를 지적합니다. 한국에서는 아파트를 소유함으로써 애착심을 갖기 때문이지요. 내 집, 내 동네라는 소유감과 소속감이 더 좋은 집, 더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한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거지요. 이에 반해 임대는 ‘내 것’과 비교해 애착과 애정이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자리(장소)를 원하거든요. 사진도 붙여놓고 화분도 가져다 놓으며, 책상을 나만의 장소로 꾸미는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밀레니얼에게도 이런 본능은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으면서도, 정착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기서 ‘공유경제’ 그리고 밀레니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유 교수는 내 집을 갖는 것은 지주가 되는 경험으로 비유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극소수만이 땅을 가진 지주였고 대부분은 그 땅을 임대해 생활하는 소작농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아파트를 소유한다는 것은 비록 허공에 떠있는 공간이라 하더라도 내가 주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아파트를 소유하지 않고 공유한다면 누가 지주가 될까요? 시민들은 다시 지주에서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것일까요?

폴인 컨퍼런스 <시티체인저 2018: 밀레니얼의 도시>에서 발표 중인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 [사진 폴인]

폴인 컨퍼런스 <시티체인저 2018: 밀레니얼의 도시>에서 발표 중인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 [사진 폴인]

현재 도시는 여러모로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도시는 끊임없이 성장을 도모해야 하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항상 아마존 같은 기업이 본사 유치에 나서는 것도 아닙니다. 설사 유치에 성공했다 해도 이점 못지 않은 부작용도 같이 따라 옵니다. 또 자본주의 시대에서 성장은 소비를 토대로 합니다. 그런데 밀레니얼은 소비보다는 공유, 정착보다는 노마드를 지향하지요. 다시 말해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고 더 나아가 경제성장을 이끄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닙니다.

폴인 컨퍼런스 <시티체인저 2018: 밀레니얼의 도시>에서는 도시가 직면한 역설적 고민에 대해 많은 토론이 오갔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같은 제목의 폴인 스토리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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