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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 몰려와 고가품 경쟁〃과열〃-우리업계는 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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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올해 국내 조명업계는 국내 및 해외시장을 놓고 일본 도시바, 미국 GE, 서독 오스람, 네덜란드의 필립스 등 세계굴지의 다국적기업과「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국내 조명업체들은 대부분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도 외국제품이 시장개방과 함께 쏟아져 들어오고 80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온 수출조차 올 들어 처음으로 감소추세로 돌아서고 있어 국제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있다.
반면 소득증가에 힘입어 내수는 연평균 30%이상 늘어나고 수요가 고급·고가화하고 있어 내수전망은 밝은 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조명업체들은 수출을 줄이는 대신 조명제품 전시장을 강남과 용산 전자랜드 등에 앞다투어 개설, 내수판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4백개 업체 난립>
한국의 조명·전등산업은 1898년 미국인「콜브란」이 설립한 한성전기회사가 진고개(충무로)에 6백개의 전등을 가설한 것이 시초.
이때만 해도 전구는 전량 일본산에 의존했으며 35년 임병철씨가 임전구제작소를 세움으로써 근대적 조명산업이 시작됐다.
이후 한국의 조명산업은 50여년의 역사를 헤아리게 됐지만 아직도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조명업계는 한국조명 공업협동조합 산하에 88개 업체가 있고 82년7월 이곳에서 분가한 전등기구조합 산하에 90개 업체가 있는데 회원사로 등록하지 않은 업체까지 헤아리면 대략 4백여개 업체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이 많은 숫자의 업체가 대부분 가내공업 수준이다.
대기업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종업원 5백명 이상을 가진 금호전기(주)와 풍우실업(주)2개 사 뿐이다.
업계의 선두주자인 금호전기는 35년 일본인이 수도계량기 생산을 목적으로 청섭 제작소를 설립한 것이 뿌리가 됐다. 이후 몇 차례 소유주와 회사명칭이 바뀌어오다 금호그룹이 인수, 78년 금호전기로 이름을 바꾼 것.
금호는 특히「번개표」상표로 시장을 공략, 현재 국내 형광등 시장의 40%안팎을 점유할 만큼 성장했는데 87년 일본 도시바와 합작, 금동조명을 설립했고 88년에는 역시 일본 해리슨 전기와 금동전구를 설립하는 등 계열사까지 거느리게 됐다.
국내 조명·전등시장 규모는 대략 2천억∼3천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5백억원 안팎에 불과했으나 소득증대·기름값 하락에 따른 전기요금인하에 힘입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태.
수출도 81년에는 3천5백86만달러에 불과했으나 꾸준히 증가해와 88년에는 1억4백20만달러로 처음으로 1억달러를 넘어섰다.

<가격경쟁력 상실>
그러나 올 들어 원화절상·임금인상 등으로 가격경쟁력을 상실, 작년 보다 수출이 3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앞으로는 더 수출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수출부진은 특히 중국과 헝가리 등 동구권국가에 밀리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은 그 동안 저임금에 힘입어 대만과 함께 전등수출 국가로 부상했으나 역시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공산권국가에 시장을 뺏기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는 것.
이에 따라 국내업체는 임금이 싼 동남아시아에 합작공장을 세워 세계시장진출을 시도하거나 내수시장공략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백열전구 전문제조업체인 태양전구 (대표 이재환) 는 작년에 태국의 PUC 사와 49대51 지분비율로 태양유한공사를 설립, 방콕에 공장을 세웠으며 남북전기는 미국, 대신전기는 중국과의 합작을 추진중이다.
수출은 올 들어 감소하고 있지만 수입은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나고 있다. 특히 과소비풍조로 수백만원∼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샹들리에 등 고가외제 품이 불티나고 있다.
외국조명업체의 국내시장진출도 활발해 현재 국내시장에는 GE(미국)·도시바(일본)·오스람(서독)·피닉스(일본) 등이 이미 합작회사를 설립, 진출해 있으며 하반기에는 네덜란드의 필립스사가 역시 합작회사를 세울 계획이다.
또한 마쓰시타·히타치·일본전기 등 일본조명업체가 국내업체와 판매계약을 맺고 내수시장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업체들은 조명전문백화점을 설치하거나 최근 각광을 받고있는 할로겐전구등 신제품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 자구노력이 한창이다.
잠실 롯데월드에 세계최대 규모라는 길이 16m짜리 샹들리에를 설치, 화제를 모았던 국제조명(대표 박종휴)은 서울 논현동에 6백평 규모의 조명제품 전시장을 곧 개설할 예정이며 용산 전자랜드에는 국내 조명업체들의 전시장이 개설돼 있다.
이와 함께 조명업체들은 과거와 같이 단순히 불을 밝히는 기능의 제품으로는 수출은 물론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제품과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해외기술을 도입, 신제품개발에 나서고 있다.
국제조명이 시력보호와 함께 하이패션에 치중한 스탠드환형 형광등을, 광명은 할로겐전구를 이용한 스프트라이트를 개발중이다.
또 세진 산업은 35%의 절전효과와 3단 조광 기능을 갖춘 가정용 전자식 안정기를 개발, 시판에 나섰으며 삼보코리아도 33%의 절전효과가 있는 안정기「발라이트」의 시판에 들어갔다.
서독 오스람과의 합작회사인 승산 오스람도 가로등용 나트륨 등을 개발, 연간 5만개를 생산할 예정이다.

<전시장개설 러시>
이 같은 업계의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외국업체의 내수시장 잠식규모는 조만간 40%에 이를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외국제품의 질이 국산보다 우수해 수명이 긴데다 보기가 좋고 값도 비교적 싸기 때문이다. 특히 고급 조명기기는 다국적기업의 제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다.
업계에서는 이에 따라 부품산업의 육성과 기술축적을 위해 정부에 협동화단지를 조성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한 업체가 소재부품에서 완제품까지 일관 생산하는 체제로는 더 이상 버텨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조명공업협동조합 김원배 전무는『국내 조명업계의 기술수준이 낮은데다 인건비·자재 값은 올라 해외시장에서 공산권 국가와 경쟁이 안 된다』고 지적하고『내수시장이라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길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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