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싶게 하려면 이것부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이윤진 육아정책연구소 저출산·육아정책실 부연구위원

이윤진 육아정책연구소 저출산·육아정책실 부연구위원

2018년 합계 출산율 0.98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합계 출산율이 1명 미만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정부와 사회 전체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외치고 수백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출산 진작 효과는 미미하다. 성과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그저 부담스럽고 힘들기만 한 일일까. 자기 시간을 희생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그저 두렵기만 한 일인 것일까. 국가와 사회가 이 만큼 돈 들여 노력하고 있는데 오히려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으니 당연히 나올 법한 물음이다.

현금 지원만으론 문제해결 못 해 #양육 존중 문화부터 자리 잡아야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도, 경제도, 국제 문제도 바람 잘 날이 없다. 내 한 몸조차 가누기 힘들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왜 힘들게 결혼해서 애를 낳아 기르느냐”고 조롱하는 분위기가 청년층에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는 묘방은 찾기 어렵다. 지난한 과정이 반복되겠지만, 자녀를 출산할 시기에 있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출산의 의미, 자녀 양육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되새기며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출산율은 상승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일본의 노력을 잠시 살펴보자. 일본은 2005년 역대 최저 출산율 1.26명을 기록한 데 이어 2017년에는 1.43명을 기록했다.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일본은 최근 ‘후속세대 법’에 따른 지침으로 ‘영유아와 청소년의 만남 체험’을 지난 3월부터 시작했다. ‘자녀 양육에 대한 의미’를 결혼 적령기에 도달하지 않는 청소년기부터 알게 해주자는 의도에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는 중·고생을 대상으로 남녀가 협력해 가정을 이루는 것과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체득할 기회를 제공한다. 탁아소와 유치원, 영유아 검진소 등을 활용해 영유아와 접촉하는 방법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담당 부서가 중심이 돼 협력 체계를 갖추고 학교 수업 시간과 연계하는 방법으로 운영된다.

영유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청소년들이 자녀 양육에 대한 부모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이해하도록 하고, 아동 발달을 위한 지역사회의 역할을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 동시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녀 양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역할도 노린다. 일본 사례는 양육에 대한 가치 인식의 중요성이 청소년기부터 자연스럽게 체득돼야 한다는 점을 법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애 키우는 것에 대한 불안함’ 이 만연한 한국사회가 참고할 만한 시도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출산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된 지 오래다. 단지 출산율 숫자에 급급할 게 아니다. 자녀를 낳고 부모가 된다는 것, 자녀를 기른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저출산 정책은 의미 있는 사회적 행위인 양육에 대한 지원과 존중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간 저출산 정책이 기본적인 목적과 가치를 등한시했다는 반성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저출산 현상은 사회문제의 총합이면서 동시에 한국사회의 가치와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자녀 양육에 관한 모든 것을 국가가 물질적으로 책임지겠다는 것은 과도한 욕심이다. “아이만 낳아다오. 돈은 얼마든지 대주마”라는 식의 일차원적 정책에 공감해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하는 여성은 이제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힘듦’을 전제로 한 양육이 아닌 ‘즐거움과 행복’을 전제로 한 양육을, 서로 지지하고 존중하는 사회문화적 변화를 위한 거국적 움직임이 시작돼야 할 시점이다.

이윤진 육아정책연구소 저출산·육아정책실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