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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더리움 창시자 vs 금융위기 예언자, 서울서 ‘암호화폐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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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분산경제포럼(Deconomy 2019)에서 암호화폐 비관론자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왼쪽)가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과 ‘암호화폐 본질적 가치의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분산경제포럼(Deconomy 2019)에서 암호화폐 비관론자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왼쪽)가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과 ‘암호화폐 본질적 가치의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극과 극이 만났다. 암호화폐에 대한 태도가 전선을 갈랐다. 부정 쪽은 전통 경제학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 ‘닥터 둠’이라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다. 긍정 쪽은 블록체인 개발자다. 페이스북 창업자를 제치고 피터 틸 장학금을 받은,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시자다.

비관론자 루비니 #“코인 가치 작년 95% 하락 불안정 #법정화폐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옹호론자 부테린 #“현재의 거품은 초기 현상일뿐 #경제 성장하면 장기적 안정될 것”

이들은 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디코노미(분산경제포럼) 2019’의 첫 번째 패널 토론에서 만났다. 주제는 ‘암호화폐 본질적인 가치의 지속 가능성’이다. 약 40분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말을 했지만, 동시에 둘 다 맞는 의견을 내놨다.

◆코인 비관론자 vs 옹호론자, 왜 한국에서 만났나=루비니가 보기에 암호화폐는 사기다. 그는 지난해 10월 자신의 트위터에 “암호화폐의 채굴자나 거래소가 중앙화돼 가고 있다”며 “개발자도 부테린에 종속돼 있다”고 비판했다.

사흘 뒤, 부테린이 반격에 나섰다. 자신의 트위터에 “2021년 이내에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면 나중에 금융위기를 예언한 전문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루비니를 비꼬았다.

트위터상에서 설전이 오갔다. 그 와중에 ‘만나서 정식 토론을 해 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둘의 ‘설전’을 지켜보던 백종찬 디코노미 오거나이저가 이들에게 직접 코멘트를 남겼다. ‘2019년 디코노미 때 맞장 토론을 해 보자’고. 백씨는 블록체인 컨소시엄 R3에서 일할 때부터 부테린을 알았다. 그가 부테린에게 토론을 제안했고, 부테린이 루비니에게 얘기를 꺼냈다. 루비니가 이를 승낙하면서, 역사적인 토론이 성사됐다.

◆루비니는 ‘현재’를 비판, 부테린은 ‘미래’를 옹호=이날 토론의 시작은 루비니였다. 공격에 나섰다. 그는 디지털 데이터 조각에 ‘화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못마땅하다. 루비니는 “암호화폐는 금융이 아니라 물물교환 시스템과 다를 바 없다”며 “비효율적이고, 안전하지도 않고, 가치 저장 기능도 없고, 변동성도 심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지난 한 해 암호화폐 가치가 95% 떨어졌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루비니는 “100년이 걸린 게 아니라 단 1년 새 벌어진 일”이라며 “암호화폐는 법정화폐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부테린이 가드를 올렸다. 루비니가 비판하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암호화폐를 옹호했다. 그는 “지금 가치에 거품이 있는 건 맞지만 이건 초기의 현상일 뿐”이라며 “주식이나 금융시장에서도 초기엔 이러하지 않았냐”고 반박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암호화폐도 안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익명성의 가치는? … 범죄자의 전유물 vs 프라이버시=익명성에 대한 접근도 달랐다. 루비니는 “범죄자나 탈세자만 익명을 선호한다”며 “암호화폐가 다음 세대의 ‘스위스 은행’이 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횡령·탈세·테러리즘·인신매매 등이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것은 익명성 때문”이라며 “어떤 정부도 익명성을 가진 암호화폐를 옹호할 순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부테린은 ‘검열 저항’의 측면에서 익명성에 접근했다.  부테린은 “암호화폐의 익명성은 사회의 자율성을 보호하기 위함” 이라며 “익명성을 통해 정부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율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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