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받아야 vs 평가지표 부당…자사고 보고서 제출 하루 앞두고 막판 장외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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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단체협의회가 4일 오전 11시30분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운영평가를 거부하는 자사고를 규탄하고 자사고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가운데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전민희 기자

서울교육단체협의회가 4일 오전 11시30분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운영평가를 거부하는 자사고를 규탄하고 자사고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가운데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전민희 기자

“자율형사립고(자사고)는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입시 기관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고, 몇 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법과 원칙에 맞게 자사고 재지정평가를 시행하고, 정부는 자사고를 폐지하겠다는 당초의 약속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자사고는 정부 정책으로 만들어진 학교입니다. 정권이 달라졌다고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바뀌니 학부모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자녀를 교육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만족하면서 다니는 학교를 정부에서 없애려는 이유가 뭔가요? 일각에서는 자사고가 입시기관이 됐다고 비판하는데, 대한민국 고교 가운데 대입에서 자유로운 곳이 있기는 한가요?”(서울 자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자녀를 둔 학부모)

자사고 재지정평가 보고서 제출기한을 하루 앞두고 교육시민단체와 학부모들의 장외 여론전이 뜨겁다. 단순히 재지정 평가 수용 여부를 떠나서 자사고 폐지와 유지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다. 진보성향의 교육단체 등은 ‘평가를 거부하는 자사고는 즉시 지정을 취소하고, 특권학교를 폐지하라’고 주장하는 반면, 자녀를 자사고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은 ‘평가지표가 부당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는 4일 오전 11시30분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운영평가를 거부하는 자사고를 규탄하고 자사고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참교육학부모회·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이 소속돼 있다.

조연희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자사고들이 법에 따라 이뤄지는 시교육청 평가를 ‘자사고 죽이기’라고 우기고 있는데, 시교육청은 이런 막가파식 항명에 흔들려선 안 된다”며 “또 현재처럼 고교 서열화된 상태에서는 일반고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으므로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에 자사고 폐지를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자사고에 우수한 학생이 몰려 일반고가 황폐화되고, 고교 서열화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또 자사고가 당초 설립 목적이었던 공교육 다양화를 실현하기보다는 대입을 위한 입시기관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사고학부모연합회(연합회)는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현행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지표 부당성을 주장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전민희 기자

자사고학부모연합회(연합회)는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현행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지표 부당성을 주장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전민희 기자

하지만 자사고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은 이들의 주장을 전면 반박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를 없애려는 악의적인 의도를 갖고 평가기준을 세웠다는 것이다.

자사고학부모연합회(연합회)는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현행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지표 부당성을 주장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연합회는 올해 평가 대상인 자사고 13곳뿐 아니라 재지정평가 앞둔 서울지역 자사고 22곳 학부모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학부모 2500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서울시교육청에 ▶평가 연기와 평가기준 재설정 ▶평가단에 자사고 측의 추천위원 포함 ▶평가관련 회의록 공개 ▶연합회의 면담요청 수용 등을 요구했다.

전수아 연합회 회장은 이 자리에서 “(서울시교육청의) 평가를 빙자한 자사고 죽이기에 학부모는 분노한다”며 “진정한 학교 평가는 학부모·학생이 하는 것이므로 교육당국은 갑질을 당장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에 사전예고도 하지 않고,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자진들의 입맛에 맞는 평가기준을 세웠다”며 “현재 시교육청의 평가지표는 법적 근거도 없고 공정성·형평성을 상실한 채 자사고를 탈락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학부모들은 이후 광화문 광장부터 약 1km 떨어진 서울시교육청 정문까지 도보로 이동하며 침묵 행진을 벌였다.

한편 현재 서울시교육청과 자사고는 재지정평가를 두고 ‘강대 강’으로 대립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평가 대상인 자사고 13곳의 운영성과 보고서를 오는 5일까지 제출받을 예정이다. 당초 지난달 29일이 마감이었지만, 자사고들이 평가를 거부하면서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들이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기본 자료와 현장평가 등을 통해 원칙대로 평가를 진행할 방침이다. 자사고가 지금처럼 평가를 거부하면 내년에는 상당수가 일반고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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