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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한국선 끼워팔고 유럽선 중단, 오만한 구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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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한국과 해외에서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는 글로벌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무죄를 주장하며 고개를 세웠다. 그런데 외국에서 먼저 유죄 통보를 받았다. 천문학적인 벌금 통지서를 받아들고서야 외국에서 “앞으로 바뀐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버티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 “외국에선 이렇게 바뀌었다”고 국내에 알리기 시작했다. 한국 소비자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만에 빠졌다는 지적을 받는 구글코리아 얘기다.

구글코리아는 지난달 26일 공식 블로그에 켄트 워커 구글 수석 부사장 명의로 ‘구글은 유럽 내에서의 선택권과 경쟁을 지지합니다’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2018년 7월 EU 결정 이후,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구글 앱과 더불어 다른 앱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는 내용이었다.

언뜻 친절해 보이는 게시글엔 배경이 있다. EU는 2015년부터 구글의 반독점법 위반 행위를 조사해 왔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플레이스토어’, ‘크롬 브라우저’ 같은 자사 앱이나 검색 엔진 사용을 강요한 혐의에 대해서다. 그 결과 2017년, 2018년에 걸쳐 총 67억 6000만 달러(약 7조6500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취재일기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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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구글 본사는 최근 “4월부터 신규는 물론 기존 안드로이드 사용자에게 검색 엔진, 인터넷 브라우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게시글은 최근 발표의 연장선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게시글 내용은 한국 시장과 관계없는 유럽에 의한, 유럽을 위한 결정”이라며 “EU의 세 번째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둔 구글이 천문학적 벌금을 피하고자 꼬리를 내렸다”고 말했다.

문제는 같은 혐의로 한국에서도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공정위는 구글이 스마트폰 제조사에 안드로이드 OS를 제공하면서 플레이스토어 앱을 끼워 판 혐의에 대해 조사 중이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하나의 서비스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갖고 다른 쪽 서비스를 계속 연결하면서 다른 경쟁사업자가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리는 행태”라고 지적한 건이다.

더욱이 한국은 검색엔진 선택권이 다양한 유럽·미국과 달리 크롬 사용자가 절반이 넘을 정도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마미영 한국소비자원 서비스팀장은 “구글은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할 한국 시장에서 정부·소비자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을 가졌다는 구글이 한국 소비자가 느낄 ‘괘씸함’에 대해선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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