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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체계 흔들라는 거냐”vs“국민 법 감정 의식해야” 대통령 지시 놓고 갈라진 반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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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 관련 보고를 받고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 관련 보고를 받고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배우 고 장자연 리스트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클럽 버닝썬 사건을 직접 거론하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자 법무부 쪽에서 먼저 반응이 나왔다. 법무부 과거사위원회가 대검 진상조사단 활동을 2개월 추가 연장키로 법무부에 건의키로 했고, 법무부는 19일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는 18일 “김 전 차관 사건과 장자연 리스트, 용산 참사 사건 조사를 위해 활동 기간을 2개월 연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사건의 실체와 제기되는 여러 의혹을 낱낱이 규명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 1시간 30여분 만에 나온 얘기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법무부도 기한 연장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을 두고 기존 형사법 체계를 흔들라는 거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2월 발족한 과거사위는 그간 진상조사단의 조사 기간을 3차례 연장했지만 김 전 차관 사건과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선 지난 12일 연장 불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날 대통령 발언뒤 자신들의 결정을 엿새만에 뒤집었다. 과거사위 위원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창립 멤버인 김갑배 변호사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대통령 지시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결정되지 않았다”면서도 "직접 수사와 같은 여러 방안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버닝썬 사건의 경우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 배당돼 수사 지휘를 시작했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과 장자연 리스트도 추가 증거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이 언급한 3개 사건 모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휘할 수 있다.

진상조사단의 활동이 연장되고, 이후 검찰에서 관련 재수사를 맡게 될 경우 최대 쟁점은 공소시효다. 김 전 차관은 두 사람 이상이 합동해서 성폭행을 할 경우 적용되는 성폭력처벌법상 특수강간 혐의를 받고 있다. 특수강간죄 공소시효는 15년으로 2024년에 만료된다. 다만 성 접대를 공무원이 지위를 이용해 뇌물을 요구하는 행위인 알선수뢰 혐의로 볼 경우 공소시효는 5년이어서 이미 시효가 끝났다. 김 전 차관은 2013년 알선수뢰 혐의로 출국금지를 당했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도 대부분 혐의에 대해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은 공소시효 10년이다. 술자리 접대를 받은 남성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강요죄도 7년이고, 성매수를 한 경우라도 5년으로 모두 재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 검찰은 지난해 6월 진상조사단 권고에 따라 공소시효가 2개월 남은 기자 출신 정치인 조모(50)씨를 강제추행(공소시효 10년) 혐의로 기소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조씨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장자연씨의 지인 윤지오씨는 재판이 끝난 뒤 "국민청원 덕에 여기까지 왔고, 망자는 돌아올 수 없어도 진실 자체가 밝혀져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정치권에선 김 전 차관 사건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버닝썬 사건은 부유층을 겨냥했다는 분석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마무리한 윤석열 지검장이 직접 나서서 세 사건을 진두지휘하면 전 정권과 일부 보수 언론, 부유층의 일탈에 관련된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이럴 경우 재조사를 통해 의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사회 전체가 진영 논리에 휩싸여 갈등이 격화되는 위험스러운 상황으로 흐를 수 있다"고 말했다.

지청장 출신의 변호사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에 대해 검찰은 수사 자체를 할 수가 없다"며 "법조인인 대통령이 모를이 없는데도 사실 관계를 밝히라고 지시하는 건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넘어 법 체계 자체와 배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민상‧이수정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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