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밀입북의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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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평민당 서경원 의원의 밀입북과 그 외에도 몇 의원의 밀입북 가능성에 관한 보도는 실로 충격적이다.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그것이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란 점을 잘 알고 있었을텐데도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도대체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더욱이 그런 일을 하고도 10개월이나 덮어두었다가 이제와 소속 당에 알리고 관계기관에 신고 했다는 것은 공인으로서 떳떳한 처신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만일 소신에 따라 입북했더라면 그 결과를 즉시 밝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나오는 것이 떳떳한 공인의 가세였을 것이다. 10개월이나 감추고 있다가 이제 와 신고한 것은 더이상 숨길수가 없었기 때문인가.
재야 과격파나 보통사람도 아닌 국회의원이 이린 일을 저지르고, 그것이 10개월이나 방치됐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과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아직 서 의원의 입북동기나 북 측과의 대화내용이 분명히 밝혀지지 않아 사건 성격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동기가 무엇이었든 법적으로는 물론 정치적·도의적으로도 용인될 수 없는 행위다. 자기를 뽑아준 선거구민이나 자기가 속한 정당에 대해서도 그는 못할 일을 한 셈이고, 많은 국민으로 하여금 국회의원이 저 모양이니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하는 깊은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의 밀입북이 10개월이나 방치된 것은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이런 일을 막고 적발·단속해야 할 관계 당국은 이번 일을 몰랐는가, 알고는 있었는가. 몰랐다면 우리의 대공태세에 중대한 허점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고, 알고도 끌어왔다면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이미 몇 달 전부터 서 의원 입북사실은 주변에 소문이 돌았고 본인이 직접 발설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번 문익환씨 방북 때도 당국의 정보능력에 대한 의심이 있었지만 이번 일도 신고를 받고서야 알았다면 관계당국의 정보능력은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알고 있었다면 왜 이렇게 발표가 늦었는지, 혹시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속셈이 있었던게 아닌지 등에 관한 의혹을 해명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해서는 평민당도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과연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인지, 당내에 사전협의를 받거나 사후 내막을 아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서 의원보호를 위해 덮어둔 것은 아니었는지 등에 관한 의문에 대해의심의 여지없이 평민당은 국민 앞에 밝히는 것이 좋겠다.
또 소속의원이 이런 충격적인 일을 저지른데 따른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다. 어떤 정당도 소속의원을 1백%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평당원도 아닌 국회의원의 이런 엄청난 일탈에 대해서는 당으로서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문익환씨 사건에 이은 이번 사건이 오늘날 일고 있는 통일과 이념에 관한 혼란이 의의로 넓고 깊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지극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분별한 통일논의의 혼란이 마침내 제도권 정계에까지 미친 것이라 봐야 할 것인가.
불행히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법이나 적절한 사전 과정을 고려함 없이 북한과의 접촉이나 북한방문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돼야한다고 주장하는 위험한 논의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서 의원의 입북도 이런 사회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라는 검에서 우리는 이번 사건을 더욱 중대시하지 않을 수 없다.
당국은 이번 사건이 충격적이고 국회의원에 관한 사건일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의문과 국민 불안을 일으킬 문제점을 안고 있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빨리 진상을 규명해 공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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