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벼랑끝 나선 북, 중ㆍ러에 보험드는 '플랜-B' 가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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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과 관계개선에 올인했던 북한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지난달 27~28일) 결렬 이후 중국과 러시아에 보험을 드는 ‘플랜-B’를 가동에 들어간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7일 “임천일 외무성 부상(차관)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부 아태지역 담당 차관과 회담을 했다”며 “러시아와 경제 및 인도주의 분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양측은 정치 분야에서 고위급 접촉 및 교류 강화, 한반도 문제와 국제무대에서 긴밀한 상호 지지와 협력을 통한 양국관계의 지속적이며 공고한 발전 등에도 뜻을 모았다. 지난 6일 김영재 북한 대외경제상 참석한 제9차 북·러 경제공동위원회 개최 이후 일주밀여 만이다. 양측은 수형자들을 송환하기 위해 준비절차를 밟는 등 어느 때보다 밀착하는 분위기다.

방러 중인 임천일 북한 외무성 부상(차관·왼쪽 두번째)이 지난 14일(현지시간)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과의 회담을 위해 모스크바 시내 외무부 영빈관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방러 중인 임천일 북한 외무성 부상(차관·왼쪽 두번째)이 지난 14일(현지시간)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과의 회담을 위해 모스크바 시내 외무부 영빈관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현상은 경제ㆍ문화 협조에 관한 협정 체결 70주년 상징적 의미에 더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 또 한동안 잠잠하던 북한이 지난 1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내세워 미국 때리기에 나선 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실제 북한은 북러 외무차관 회담이 14일 열렸지만, 사흘 뒤인 17일에야 관련 소식을 전했다.
북한은 지난주 고위급 대표단을 중국에 파견하기도 했는데 대표단에는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실무협상에 나섰던 김혁철 국무위원회 특별대표도 포함된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나 북한 모두 이런 사실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지난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에 대한 후원과 후견을 약속한 바 있다. 북한이 러시아와는 경제협력, 중국과는 북핵 협력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지원 요청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놓고 북한이 미국과 협상이 여의치 않자 중국, 러시아와의 전통적 우방 관계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는 플랜-B 가동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후 열흘 남짓 동안 북한이 향후 대응책을 고심한 결과라는 것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대북제재를 완화한 뒤 국제사회의 투자와 지원을 통해 경제 회생을 추구하는 전략이었다”며 “이런 차원에서 미국과 협상에 '올인'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자 중국과 러시아에 외교ㆍ경제적 지원을 요청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계획과 달리 미국과 협상이 장기전으로 늘어질 수 있는 만큼 최소한의 지원을 기대하는 차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이 중국, 러시아에 접근하는 걸 경계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미국이 아니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일종의 시위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진무 숙명여대 겸임교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먹히고 있다고 판단하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지원에 대해 압력을 행사할 수 있어 북한의 보험이 제대로 작용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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