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없다던 SK케미칼 '가습기 보고서' 검찰이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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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SK케미칼 김철 대표가 답변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당시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보고서를 보관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었다. [중앙포토]

2016년 8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SK케미칼 김철 대표가 답변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당시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보고서를 보관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었다. [중앙포토]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공급업체인 SK케미칼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이 담긴 연구 보고서를 찾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압수수색서 '가습기 유해성 보고서' 확인 #국회서 "보고서 없다"는 SK케미칼 은폐 정황 #SK케미칼 임원 4명 14일 영장실질심사

2016년 8월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에 참석했던 김철 SK케미칼 사장이 당시 해당 보고서를 "보관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만큼 위증 논란도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지난 1월 SK케미칼 압수수색에서 가습기 살균제 출시 전인 1990년대 초 작성된 서울대 이영순 연구팀의 '유해성 보고서'를 찾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해당 보고서가 삭제된 정황도 파악해 SK케미칼이 가습기의 유해성을 감추려 조직적 은폐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SK케미칼 임원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상태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과 관련해 지난 1월 15일 SK케미칼 본사, 애경산업, 이마트에 대해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뉴스1]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과 관련해 지난 1월 15일 SK케미칼 본사, 애경산업, 이마트에 대해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뉴스1]

검찰은 해당 보고서가 SK케미칼이 1994년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하기 전 유해성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중요한 증거로 보고 있다.

당시 연구팀은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백혈구 수가 변화하는 것을 확인하고 무해성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은 SK케미칼이 이런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가습기 살균제 출시를 강행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SK케미칼은 국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90%가 넘는 사람들이 사용한 살균제 원료를 공급했던 업체다. 2016년 검찰 조사에서는 관련 원료(CMIT·MIT)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환경부가 지난 1월 관련 성분의 유해성을 확인해 검찰이 수사를 재개했다.

이번 사건을 고발한 가습기 살균제참사 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정부에 신청된 가습기 살균 피해자는 총 6210명이며 사망자는 1359명, 생존자는 4851명이다. 2016년 기준 피해자 4050명보다 약 2000명이 늘어난 수치로 피해자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구요비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가 지난 1월 29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찾아가 병자 성사를 했다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밝혔다. [연합뉴스]

구요비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가 지난 1월 29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찾아가 병자 성사를 했다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밝혔다. [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참사 네트워크는 2016년 국정조사 당시 위증 의혹이 있는 김철 SK케미칼 대표의 처벌을 요구하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법상 특별위원회 등에서 위증한 경우 보통 2~3달 정도의 특위 활동 기간 내에 고발했을 때만 처벌할 수 있다.

특위가 종료되면 고발의 '주체' 자체가 사라진다는 이유 때문인데 가습기 피해자 단체에선 법 개정을 통해 김 대표의 위증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에 대한 처벌도 주장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측 변호를 맡은 주영글 변호사(법률사무소 해내)는 "SK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주요 원료를 공급했던 기업이었다"며 "참사가 발생한 뒤에도 반성하기보다 범죄 사실을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인·정진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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