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국민 반발’ 부른 부총리 발언의 가벼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여기 한 사람의 ‘말’ 때문에 불만스러운 3인이 있다.

#1. 직장인 안진영(40)씨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일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를 검토하겠다”고 하면서다. 안씨는 납세자연맹 홈페이지에 들러 공제 축소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 안씨처럼 카드 소득공제를 받는 직장인 반발이 빗발치자 홍 부총리는 11일 “소득공제 축소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안씨는 “신용카드를 없애야 하느냐까지 고민했는데 정부가 너무 손쉽게 뒤집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2. 직장인 이지용(37)씨는 요즘 혼란스럽다. 주식 장세가 좋지 않아 펀드·예금으로 갈아탈까 했는데 증권거래세 인하 소식이 들려와서다. 홍 부총리는 지난 1월 16일 “증권거래세 인하를 밀도 있게 검토한 적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같은 달 30일엔 “증권거래세 인하를 적극 검토하겠다”며 치고 나갔다. 지난달 24일엔 “증권거래세 폐지는 사실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이씨는 “나 같은 ‘개미’ 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인데 오락가락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3. 이재웅(51) 쏘카 대표는 지난달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불만 글을 올렸다. 전날 홍 부총리가 “공유 경제 서비스는 기존 이해관계자가 반대하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도입하기 어렵다. 이해관계자와 타협을 중시해야 한다”고 한 데 대해서다. 이 대표가 올린 글은 다음과 같았다. “홍 부총리 발언은 비상식적이다. 혁신하겠다는 이해관계자와 혁신을 저지하는 이해관계자를 모아놓고 어떤 대타협을 기다리느냐”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는 혜택받는 사람이 1000만명에 이를 정도로 파급력 있는 이슈인데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나와 혼란을 일으켰다. 증권거래세 이슈는 세수 감소를 우려해 인하에 반대하다 정치권 압박에 밀려 길 잃은 모양새다. 공유경제 이슈는 웬만해선 관(官)에 반기를 들지 않는 민간 기업까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세운 원칙을 여론 눈치 보기, 정무적 판단 때문에 뒤집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금리를 좌우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나 한국은행 총재는 “인내심을 갖겠다” “경제가 녹록지 않다” 식으로 조심스럽게 발언한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다. 국민이 홍 부총리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그가 거시 경제는 물론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경제 사령탑’이라서다. 13일 취임 100일을 맞는 홍 부총리가 자리의 무게감을 더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