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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3만 달러'가 숫자놀음 안 되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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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호 면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김종윤입니다. 한국이 ‘30~50클럽’에 든 건 기쁜 일입니다. 인구 5000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총소득(GNI: Gross National Income)이 3만 달러를 넘은 30~50클럽에는 지금껏 6개국만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수치를 보면서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질문입니다. “4인 가족 기준이라면 연 총소득이 12만 달러(약 1억3000만원)가 돼야 평균치인데 이게 가능한 얘기이냐”라는 것이죠. 주변을 돌아보면 “그럴 리 없다”는 말이 나오죠.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 시대 [연합뉴스]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 시대 [연합뉴스]

GNI는 국민이 국내외에서 생산에 나서거나 생산에 필요한 자산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소득의 합계입니다. 1인당 GNI는 명목 GNI를 한 나라의 인구수로 나눈 수치입니다. 이 GNI에는 정부와 기업 소득도 포함됩니다. 소득을 올리는 주체는 가계만이 아니라는 얘기죠. 기업과 정부도 소득을 올립니다.

1인당 GNI 3만 달러라는 수치와 체감이 다른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한국은 소득에서 차지하는 가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정부와 기업의 비중은 큰 나라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바탕으로 산출한 가계소득 현황을 보겠습니다.

2016년 기준으로 전체 소득 중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61.7%로 나타났습니다. 정부 비중은 13.8%, 기업 비중은 24.5%입니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NI가 미국 달러화 기준으로 3만1349달러였으니 실제 가계의 1인당 GNI는 1만9000달러 수준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OECD 회원국 대상으로 봤을 때 전체 소득에서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의 평균치는 65.9%입니다. 미국은 가계 소득 비중이 79%나 되고, 스위스ㆍ영국ㆍ독일ㆍ캐나다 등도 70%가 넘습니다. 한국의 가계 소득 비중은 통계 산출이 가능한 27개국 중 22위에 그칩니다. 2016년 기준 한국의 가계 소득 비중은 2000년과 비교해서 6.1%포인트 낮아졌습니다. 반면에 기업 소득 비중은 이 기간에 6.8%포인트 올랐습니다.

노동소득분배율을 보더라도 한국 가계의 소득이 적다는 걸 유추할 수 있습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피용자 보수)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합니다. 이게 2017년 기준으로 63%입니다(한국은행). 이 비율이 70% 이상인 선진국에 못 미칩니다.

국민이 배부르려면 가계 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기업의 소득을 가계로 강제로 이전할 방법은 없습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부작용이 속출할 겁니다. 결국은 전체 파이를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것보다 파이를 사용자에서 근로자로 이전하는 데만 관심을 둔 듯합니다. 대표적인 게 최저임금 급격 인상 같은 정책이죠.

결국 필요한 건 일자리입니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듭니다. 불필요한 규제의 완화나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화 유도, 성장동력 발굴 지원 같은 해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건 사회적 자본의 확충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보면 1인당 GNI 4만 달러 달성 국가들의 3만~4만 달러 시기 경제지표 평균치를 100으로 봤을 때, 한국은 정부 효율성(70), 비즈니스 효율성(37), 사회적 갈등(55), 투명성(65) 등 사회적 자본 지표가 한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치판을 보면 갈등을 먹고 사는 인종들만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는 내 편과 네 편으로 패가 갈린 지 오래입니다. 복지부동 관료에게서 효율성을 기대하는 건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비즈니스 효율성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사회적 자본이 잘 확충된 나라일수록 구성원끼리 믿음이 깊고, 이를 보장하는 법 제도가 잘 구축돼 있습니다. 당연히 거래비용이 적어지고 효율성이 향상되면서 국민소득은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위치에 서 있을까요. 갈등ㆍ부패ㆍ양극화를 넘어 투명ㆍ효율ㆍ신뢰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3만 달러 돌파니, 4만 달러 도전이니 하는 숫자 놀음이 별로 반갑지 않은 까닭입니다.

지난주 중앙SUNDAY는 김우창(83) 고대 명예교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한국은 도덕적ㆍ윤리적 선진국이 아니다.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견제하는 체크 앤 밸런스 문화가 필요하다.” 윤리적 삶에 대한 석학의 지적은 울림이 컸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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