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검찰의 반기가 불쾌하지만 공식 반응 않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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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6일 검찰이 청와대가 추진하는 ‘자치경찰제안(案)’에 반기를 든 데 대해 이례적으로 아무런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중앙일보 6일자 1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이 1월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연합뉴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이 1월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연합뉴스

검찰이 지난달 당ㆍ정ㆍ청이 발표한 자치경찰제 안에 대해 “실효적인 자치경찰제라고 하기엔 미흡하다.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한 것은 ‘항명(抗命)’으로 볼 수도 있는 사안이다. 때문에 청와대 내부적으론 매우 불쾌해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그러나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워낙 민감한 사안이다. 내부적으로 정리가 우선돼야 하는 문제가 있어 당장 반응을 내기 어렵다”고만 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검찰 입장 표시에 대한 민정수석실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 “별도 언급이 없었다”며 입을 닫았다.

청와대 대신 대통령소속 자치분위원회(자분위)가 입장을 냈다. 자분위는 관계 법령에 따라 자치경찰제 안을 마련해 의결하는 기구다. 자분위는 이날 해명자료에서 “자치경찰제안은 자분위 중심으로 관계부처가 논의해 당ㆍ정ㆍ청 협의를 통해 확정한 정부안”이라며 자치경찰제를 설계한 주체가 청와대가 아닌 해당 위원회라고 밝혔다. 자분위는 “‘경찰서 단위 이하를 자치경찰로 이관하자’는 대검찰청의 의견은 경찰체제의 급격한 변화로 자칫 국가경찰의 와해로 비춰질 수 있다”며 “치안현실이 고려되지 않은 비현실적 방안”이라고 반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자치경찰제의 내용은 검찰과의 조정 사안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검찰의 반발을 신경쓸 수 밖에 없는 건 자치경찰제가 사실상 검ㆍ경 수사권 조정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검ㆍ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문무일 검찰총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도 자치경찰제 동시 실시를 조건으로 수사권 조정에 대해 ‘최소한 반대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았다”며 “검찰의 수장이 자신의 권한 축소에 대해 사실상 동의하고 추진한 수사권 조정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중간에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수사권 문제를 주도해온 조국 민정수석도 검찰과 경찰을 지속적으로 직접 설득해왔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일인 지난해 12울 1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열린 2018 인권의 날 기념식에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의 기념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일인 지난해 12울 1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열린 2018 인권의 날 기념식에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의 기념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도 민정수석실의 ‘사전 조율’을 근거로 지난달 1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가정보원ㆍ검찰ㆍ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은 서로 간의 전제조건일 수 없지만 가능하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이 자치경찰제안에 대해 수용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문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수사권 조정의 로드맵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됐다. 사법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조국 민정수석의 부담도 더욱 커졌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1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날 오전 열린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1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날 오전 열린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수석은 지난달 전략회의가 끝난 뒤에 브리핑에서 “남은 것은 국회에서 막혀있다. 그것을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라고 참석자 모두가 토로했다”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간의 조율은 마무리 됐다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정작 검찰의 생각은 조 수석과 달랐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청와대가 검찰을 어떻게 견인할지가 키포인트로 떠올랐다. 이날 검찰의 한 간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이 양보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더욱 미묘한 대목은 서울 동부지검이 수사하고 있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청와대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야권에선 “검찰이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와 블랙리스트 수사를 거래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검찰이 블랙리스트 수사를 제대로 안하면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경찰 편을 들어주겠다고 압박중이다. 검찰의 태도가 내심 불쾌하지만 청와대가 공식 반응을 삼가는 것은 수사와 관련한 오해를 피하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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