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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펜보다 강하다" 1인 시위 나선 소방관들

중앙일보

입력

4일 오전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전북 익산소방서 인화119안전센터 소속 김선호 소방교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취객을 구하다 숨진 동료 구급대원 고(故) 강연희 소방경에 대해 "위험직무순직이 아니다"고 결정한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사진 익산소방서]

4일 오전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전북 익산소방서 인화119안전센터 소속 김선호 소방교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취객을 구하다 숨진 동료 구급대원 고(故) 강연희 소방경에 대해 "위험직무순직이 아니다"고 결정한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사진 익산소방서]

"5만 소방공무원의 희생을 조롱한 인사혁신처장과 담당자를 교체하라!"

강연희 구급대원 위험직무순직 부결에 반발 #4일부터 세종시 정부청사 앞서 릴레이 시위 #1차 전국 200여 명 동참…해시태그 운동도 #"재해보상 심사에 현장 전문가 포함" 주장 #유족도 재심 신청…로펌 '화우' 법률 지원

소방관들이 4일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이런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취객을 구하다 숨진 여성 구급대원 고(故) 강연희 소방경(사망 당시 51세)에 대해 "위험직무순직이 아니다"고 결정한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인사혁신처는 지난달 15일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 심의 결과 강연희 소방경의 사망은 공무원 재해보상법에서 정한 (일반)순직에는 해당되나 같은 법 3조 1항 4호 및 5조 2호에서 정한 위험직무순직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위험직무순직 유족급여 청구에 대해 부지급을 결정했다. 유족과 동료 소방관들은 "이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공무원에 대한 예우냐"며 반발했다.

강 소방경은 지난해 4월 2일 익산역 앞 도로에서 술에 취해 쓰러진 윤모(48)씨를 119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옮기다가 봉변을 당했다. 윤씨는 강 소방경의 머리를 주먹으로 대여섯 차례 때리고 "○○년, XX를 찢어버린다" 등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 윤씨는 폭력 등 전과 44범이었다. 강 소방경은 사건 이후 불면증·어지럼증·딸꾹질에 시달리다 5월 1일 뇌출혈로 숨졌다.

지난해 4월 2일 전북 익산시 원광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윤모(48)씨가 자신을 구해준 구급대원 강연희(51·여) 소방경의 머리를 때리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캡처. [사진 전북소방본부]

지난해 4월 2일 전북 익산시 원광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윤모(48)씨가 자신을 구해준 구급대원 강연희(51·여) 소방경의 머리를 때리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캡처. [사진 전북소방본부]

소방청에 따르면 이번 1인 시위에는 1차로 강 소방경이 근무했던 전북 익산소방서를 중심으로 서울·경기 등 전국 소방공무원 200여 명이 참여한다. 하루에 20명 안팎의 휴가자나 비번자가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번갈아 가며 시위하는 릴레이 방식이다.

소방공무원들은 "피는 펜보다 강하다"는 뜻이 담긴 '#피_더펜' 해시태그 운동도 병행할 계획이다. '피'는 현장근로자의 애환과 땀을, '펜'은 관료 중심적 사고와 행정의 권위주의를 상징한다고 소방공무원들은 밝혔다. 현장근로자보다 행정근로자를 우대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자는 취지다. 소방공무원들은 "강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 부결 배경에는 항상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공무원 업무의 위험성과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관료들이 있다"고 보고 있다.

4일 오전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전북 익산소방서 정은애 인화119안전센터장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취객을 구하다 숨진 부하 구급대원 고(故) 강연희 소방경에 대해 "위험직무순직이 아니다"고 결정한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사진 익산소방서]

4일 오전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전북 익산소방서 정은애 인화119안전센터장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취객을 구하다 숨진 부하 구급대원 고(故) 강연희 소방경에 대해 "위험직무순직이 아니다"고 결정한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사진 익산소방서]

이날 첫 시위자로 나선 정은애 익산소방서 인화119안전센터장은 "강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 부결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며 사명감 하나로 직무를 수행해 온 소방공무원들에게 깊은 상처를 줘 부득이 1인 시위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 소방경의 직속 상관이던 정 센터장은 "위험직무를 심사하는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에는 의사와 변호사 외에 현장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며 "소방공무원이 숨졌을 때는 소방공무원이, 경찰관이 숨졌을 때는 경찰관이 심사에 들어가야 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유족인 남편 최태성(53) 소방위(김제소방서 화재진압대원)도 이날 공무원연금공단 서울지부를 통해 위험직무순직 재심을 청구했다. 법무법인 '화우'가 공익소송 형식으로 법률 지원에 나섰다.

화우 측은 "인사혁신처는 단순히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의 심의 결과만 전달하면서 고인이 수행한 직무의 성격, 고도의 위험 요인, 스트레스의 심도, 객관적 병력의 유무 및 상관성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며 "재심과 추후 소송을 통해 고인의 사망이 법에서 정한 위험직무순직에 해당한다는 점을 객관적 사실과 법리를 통해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소방공무원들은 강 소방경의 죽음을 조직 전체의 일로 보고 있다. 소방관 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3년~2018년 9월 구급대원 폭행은 1011건에 달했다. 정문호 소방청장은 "위험직무로 결정되기를 기대했는데 부결돼 안타깝다"며 "향후 절차가 있으니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세종=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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