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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대표소송제 도입 무모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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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8일 여당과 정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올해 안으로 상법을 개정해 이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고 한다. 이중대표소송이란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실질적으로는 하나라고 본다면 이 제도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른 결과를 빚을 수 있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기 위해 이 제도가 악용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현행 상법상 자회사는 자회사 주식 중 50% 이상을 모회사가 갖고, 나머지 주식은 제3의 법인 또는 개인이 소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경우 자회사의 이사는 모회사의 이익뿐만 아니라 나머지 다른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도 충실하게 업무를 집행할 의무를 진다.

그러나 이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자회사 이사가 충실히 업무를 집행해 자회사에는 이익이 됐지만 모회사에는 손해가 발생한 경우, 모회사 주주들로부터 책임 추궁을 당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회사의 이사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이익보다 모회사 이익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모순된 결과가 초래된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논란 가운데 하나는 재벌그룹의 자회사가 모회사에 종속돼, 자회사 주주의 희생을 전제로 모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직적 결합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중대표소송제는 거꾸로 기왕의 재벌 지배구조가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니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모를 노릇이다.

정부와 여당은 개별 회사 이사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 제도를 도입한다고 한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모회사와 그 대주주가 투자해 자회사를 설립한 후 자회사에 그룹의 이익을 몰아주는 방법으로 모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 모회사의 주주와 채권자들을 보호하자면 이 같은 이익 전가 행위에 적절한 제한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일부 기업의 부적절한 행태를 바로잡는다며 대다수 기업에 과다한 규제를 추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자기 회사를 위해 일해야 할 자회사 이사들더러 모회사 주주의 이익을 앞세우도록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건전한 기업-주주 관계를 해칠 우려가 크다. 마치 발가락의 조그만 종기를 치료한다며 아예 다리를 절단하자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이중대표소송을 법으로 보장한 나라는 없다. 미국은 판례법상 자회사가 실질적으로는 모회사의 한 사업부에 불과한 경우 일시적으로 모회사의 주주에게 대표소송권을 인정하고 있다. 즉, 모회사 또는 그 지배주주가 자회사의 주식 모두를 소유하고, 모회사의 경영진이 자회사의 임원을 겸직하며, 자회사에서 지속적으로 사기나 부정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모회사와 자회사 간에 자산의 혼동과 자본 결손이 있는 경우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했을 때에 한해 극히 제한적으로 이중대표소송을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이중대표소송제의 입법화를 논의한 적이 있으나, 자회사 주주 보호가 우선이라는 판단에 따라 입법을 포기했다.

더구나 현행 법제 아래서도 이중대표소송과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대법원이 불허하기는 했지만 고등법원이 이중대표소송을 법리상 허용한 바 있고, 회사에 중대한 손실을 끼친 기업주에 대해 사적으로 채권자와 주주에게 배상하라는 판례도 있다. 이처럼 현행법으로도 계열사 간의 부당한 이익 전가 행위를 규제할 길이 있는데도 이중대표소송을 새삼스럽게 법제화하겠다는 것은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실효성도 없고,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규제를 굳이 도입하겠다면, 미국 판례법상 정립된 허용 요건을 반드시 명문화해서 적용 대상을 최소화하는 데 그쳐야 한다.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기업소송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