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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독수리훈련 폐지…연합 방위전력 큰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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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미가 실시하는 유일한 대규모 야외기동 연합군사훈련인 독수리(FE) 훈련이 올해부터 없어진다. 매년 3~4월 한·미 연합군이 해 왔던 독수리 훈련은 1994년 팀스피릿(TS) 훈련이 중단된 뒤엔 한국군과 미군 증원군이 실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움직이며 전쟁 상황을 상정해 하는 훈련이었다. 또 독수리 훈련과 비슷한 때인 3월에 하는 키리졸브(KR) 연습도 종료하고 대신 ‘동맹’이란 이름의 소규모 연습을 하기로 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은 2일 오후 10시부터 45분간 전화 통화를 한 뒤 이같이 결정했다고 국방부가 3일 밝혔다. 한·미 국방부는 공동으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종료한다(conclude)’고 설명했다.

미군 유사시 증원 훈련 줄어들고 #‘핵우산’ 전략자산 전개 축소 #주한미군 감축도 논의될 우려 #지휘소 연습 키리졸브는 축소

한·미 국방부는 이들 연합훈련을 끝내는 대신 새롭게 마련된 연합 지휘소 연습과 조정한 야외기동훈련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관련, 합동참모본부와 한미연합군사령부는 ‘동맹’이란 이름의 연합훈련 일정(4~12일)을 발표했다. 이 훈련은 키리졸브 연습과 마찬가지로 지휘소연습 형태로 이뤄진다. 지휘소연습은 야외에서 실제로 기동하는 훈련이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하는 워게임이다. ‘동맹’의 훈련 기간은 9일로 키리졸브 연습(2주)보다 줄었다. 훈련 내용도 절반으로 축소됐다. 군 소식통은 “키리졸브 연습은 1부 방어, 2부 반격을 하는 일정으로 짰는데, ‘동맹’ 연습은 2부를 생략하고 토의나 점검으로 대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미 군 당국은 또 독수리 훈련을 끝냄에 따라 대대급 이하 소규모 부대의 야외기동훈련을 연중 열기로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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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연습과 키리졸브 훈련의 종료는 북·미 비핵화 협상을 감안한 결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북·미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어제 만찬 때 더는 로켓과 핵 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따라서 독수리 훈련, 키리졸브 연습 종료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한·미도 대규모 연합훈련을 하지 않겠다는 대북 ‘상응 조치’로 풀이된다.

한·미 국방부는 독수리 훈련과 키리졸브 연습 종료를 밝히면서 “군사대비 태세를 확고하게 유지해 나간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 연합훈련 종료로 군사 전력에는 일정 정도 여파가 예상된다. 김진형 전 합참 전략부장은 “미군은 1~2년 단위로 바뀌는데 대규모 연합훈련인 독수리 훈련이 종료되면 이들이 한반도의 전장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채 한국을 떠날 수 있다”며 “한·미 군 장병이 서로 합을 맞출 기회도 적어지면서 앞으로 이대로 계속된다면 연합방위 태세에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수리 훈련 종료의 1차적 의미는 향후 미군 증원군을 동원하는 훈련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미 대규모 야외기동훈련 종료 … 북한 “핵실험 않겠다” 약속에 상응 조치

독수리훈련은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해 미국 본토와 괌 등 해외 기지에서 미군 증원군이 와서 한국군과 함께 전투를 벌이는 훈련이다. 그런데 한·미 연합군의 작전계획은 전시 대규모 증원군을 받는 상황을 전제로 해서 짜였다. 이 같은 작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검증해 보는 대표적인 연합 훈련이 독수리훈련이었다. 따라서 독수리훈련이 종료하면서 전면전 발발에 대비해 한·미의 작계를 검증하는 기회도 줄었다.

이 훈련의 종료는 전략자산 전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증원군에는 병력만 아니라 장비도 포함돼 있다. 미군 증원군의 대표 병력이 해병대라면 증원 장비의 대표 격은 전략자산이다. 전략자산 전개는 확장억제(핵우산)의 담보물과 같다. 그동안 미국의 역대 행정부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해 유사시 핵이 없는 한국을 미국이 자신들의 핵 전력으로 대신 보호해 주는 ‘핵우산’을 약속해 왔다. 그런데 증원군 배치를 상정한 연합훈련이 줄어들면서 향후 증원군과 함께 오는 미군 전략자산의 전개 연습도 대폭 축소되거나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 소식통은 “3일 한·미 국방 당국의 발표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미군은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줄이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수많은 폭격기가 괌에서 이륙한 뒤 7시간을 날아 (한국에) 폭탄을 떨구고 돌아간다”며 “이런 군사훈련엔 수억 달러가 든다. 나는 이런 걸 보길 싫어한다”고 단언했다. 트럼프가 말한 ‘폭격기’는 독수리훈련 등에 동원됐던 대표적 미군 전략자산인 B-1B다.

전반적인 연합훈련의 축소는 궁극적으론 미국 내부에서 주한미군의 주둔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부를 전망이다. “훈련도 하지 않는 대군을 왜 주둔시키는가”라는 본질적 의문이다. 신원식 전 합참차장은 “올해 하반기 방위비 분담금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원하는 수치를 얻지 못할 경우 주한미군 규모를 줄이자는 논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서 “주한미군 가운데 지상군이 가장 먼저 감축 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 국방부는 이날 매년 8~9월 여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어떻게 될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이 유예됐다는 점에서 올해도 실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군은 보고 있다. 올해 정부 차원의 국가비상사태 대비 훈련인 을지연습이 한국군 자체 훈련인 태극연습과 합쳐져 5월 열린다.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실시 가능성이 낮아진 이유다.

◆독수리훈련과 키리졸브 연습=키리졸브 연습은 한·미 군이 작전계획을 바탕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유사시 상황에 대응하면서 진행하는 워게임 방식의 지휘소연습(CPX)이다. 독수리훈련은 실제로 미군 증원군이 한반도에 들어와 야지에서 한국군과 함께 뛰는 기동훈련(FTX)을 뜻한다. 독수리훈련은 1961년 한국군 자체적으로 소규모 방어훈련으로 시작됐다. 75년부터 미군이 참가했다. 이후 2002년부터 유사시 미국 증원전력을 한반도에 전개하는 절차를 훈련하는 한·미 연합 전시증원연습(RSOI)과 합쳐졌다. 한·미 연합 전시증원연습은 2008년 키리졸브로 개명됐다. 두 훈련은 매년 3월에 시작하는데 지난해는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인 4월로 늦춰져 실시됐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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