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책임 회피...광주 특위에 새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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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광주 문제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부인한 미 국무성의 성명서는 전두환·최규하 전 대통령의 증언과 5공 핵심 인사 처리 문제로 교착 상태에 빠져있던 광주 특위에 새로운 불씨를 던져 주었다.
여야 모두 답변서의 유출이나 답변 내용에 불만이지만 그 대응 태도는 사뭇 다르다.
광주 문제로 정국의 주도권을 다시 잡아 보려는 평민당은 특위 전체 회의를 열고 청문회 재개 및 추가질문·위증 고발 등 공세를 펴려하고 있으나 민정당측은 이 답변을 특위를 매듭 지어가는 과정의 하나로 보고 보고서 작성에 참조하자고 주장하는 등 문제의 확대에 반대하는 눈치다.
여야는 조만간 광주 특위를 재가동해 미국측 답변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예정이지만 이처럼 여야의 입장이 미묘하게 얽혀 있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 답변 내용중 가장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광주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사전 인지 및 한국군이동 승인 등 개입 여부다.
미국측은 특전사에 대해 작전 통제권올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특전사의 광주 투입을 몰랐다고 했으며 2O사단 등 투입 계획을 알고 있던 부대에 대해서도 앞서 작전 통제권을 이양했으므로 책임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평민당측은 그 동안의 특위 증언 내용과 군 관계 자료 등을 증거로 볼 때 미국이 사전에 알고 있었음은 물론, 협조까지 했다는 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미 측 답변중에는 명백히 사실과 틀린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5월26일 이희성 계엄 사령관 명의로 전교사에 하달된「상무충정작전」지침서에는 27일 O시1분부터 시작될 광주 진압 작전에 대해 26일 오후 김재명 육본 작전 교육 참모 부장과 연합사「세네월드」작전 부장간에 구두 협조를 필하였다고 명기되어 있다.·

<야 주장과 차이점>
이 부분과 관련, 이희성씨는 지난 11월18일 청문회에서 『미국은 만일의 경우 광주 사태가 장기화해 여러 가지 소란이 일고 북괴의 남침이 있을 경우를 고려해 미국의 해·공군을 한국 근해에 배치할 때까지 작전개시를 기다려 달라는 협조 요청을 해왔다』고 미측과의 사전 협의를 간접 시인했다.
미국축은 한미간 사전 연락에 대해 『당시 「위컴」장군과 그의 참모들은 한국군 관계자들과 빈번한 연락을 취했다』며 『그러나 미 정부는 협상을 촉구했고 군사력 사용시 시민들을 다치지 말도록 종용했다』고 밝혔지만 이를 두고 야당측은 미국이 군사적 공백을 뒷받침해 주었고 진압 억지에는 소극적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보고있다.
야당측은 또 5월23일 광주지역 질서유지를 위해 작전 통제권 해제를 요청한 33사단 1개대대에 대해 미측이 『알지 못하는 일이며 33사단은 연합사 작전 통제권 하에 있었다』고 밝힌 것도 계엄 사령관이 연합사 사령관에게 33사단 1개대대의 작전통제권 이양을 요청했고 연합 사령관이 이를 승인했다고 관련서류 (작상전 01232)등을 제시하며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측은 미국측이 특전사의 광주 이동을 몰랐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도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설사 한미 연합사 작전 통제권밖에 있어 한국 군부가 특전사 이동에 대한 사전승인 취득의무가 없다 하더라도 예컨대 △4월22일 합북 소요 진압을 위한 11공수의 투입과 △6월19일 광주 진압을 마친 11, 13공수의 복귀 등에서 한미 연합사에 사전 보고했던 점으로 볼 때 당연히 광주 투입 당시에도 사전에 연합사측에 보고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특히 미국측이 작전 통제권을 이미 이양한 20사단의 투입을 워싱턴과 협의, 『마지못해 받아들였다』고 한 부분은 형식적 작전 통제권의 이양 여부와 상관없이 실질적으로 작전통제권을 행사, 20사단의 이동에 「동의」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예라고 야당측은 주장하고 있다.
또 한가지 문제는 당시 군부가 5·17 계엄 확대 이유로 내세웠던 이른바 「북괴의 도발징후」다. 주영복·이희성씨 등이 청문회(지난해 11월18, 19일)에서 북한의 도발 징후가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으나 미 측 답변서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당시 주씨는 △5월10일 휴전선에서 총격전이 있었다는 미 국방성 발표△5월16일 비무장지대에서 교전이 있었다는 UN군 사령부의 발표 △휴전선 부근 10개 사단의 기동 훈련 등 국방부가 수집한 정보에 따라 북의 도발징조가 있었다고 증언했으나 미측은 남침의 어떠한 징후도 없었다고 군부 쪽에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국방부가 수집한 정보의 신뢰성, 이와 관련한 증인들의 위증 여부가 문제가 될 것 같다.
또 하나 문제가 될 부분은 도청 진압 작전당시 30명이 사망했다고 통보한 부분. 지금까지 증언이나 군 자료에서는 18명으로 되어있어 지난번 청문회에 증언한 박준병씨 등의 위증문제가 생겼다.
야당측은 특히 광주 사태의 원인을 「특전사의 비행」으로 간주한 「글라이스틴」대사의 판단 등을 들어 정호용 당시 특전 사령관이 책임져야 할 이유가 명백해졌다고 주장, 사퇴 요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민정당측은 미측이 80년 당시 신군부 세력의 정권 장악 기도를 부각 시킨데 대해 무척 못마땅한 표정이다.
자신들의 책임을 모면하기에 급급해 소장군부 세력을 「반군」이라고 규정하고 「전씨와 그 일당」등으로 표현한 것은 5공과 미측간의 긴밀한 관계에 비춰 야비하다고 보는 것 같다.
민정당이 특히 불쾌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12·12사태는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 것』『80년 5월 시위는 비폭력적이였고 군대 없이 경찰만으로도 견제 할 수 있었다』『특전사 부대의 지나친 반응이(광주) 비극의 직접적인 원인』등이다.
이민섭 민정당 광주 특위 위원장은 『미측의 시각이 당시의 것인지 지금의 시각인지도 모를 일이고 무엇보다 이는 내정 간섭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비판하고있다.
민정당은 그래도 미측이 작전 통제권 문제를 명확히 밝힌 점을 환영하면서 특위 전체 회의를 소집하기 보다는 한미 소위에서 내용을 분석·검토해 사실에 맞는 부분만 보고서 작성에 인용, 가급적 사태를 덮자는 입장이다. <이년홍·김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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