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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들어옛사람을보다] 진안 천반산과 정여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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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원식 월간 '사람과 산' 편집위원 <david2010@hanmail.net>
사진=신준식 '사람과 산' 기자 <po1sjs@dreamwiz.com>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강물 풍경이 예술이다. 잠시 솔 그늘 신세 지고 비경을 넋 놓고 감상하노라면 실바람이 어느새 겨드랑이를 살살 간질인다. 금강 상류 구량천.

천반산을 오른다. 산행 기점은 진안군 동향면 장전마을 휴양림 식당. 등산로를 타자마자 바로 비탈이다. 낑낑거린다. 다리에 쥐가 날 것 같다. 팥죽땀이 온몸에 뒤엉킨다. 하지만 어언 산의 매혹에 도취한다. 질탕한 녹음에 심취한다. 여름 천반산은 야성의 바다다. 에너지의 총화며 에테르의 총합이다. 산을 오르는 사이 오장 깊은 곳까지 뜻밖의 원기가 수혈된다.

정상인 깃대봉에 닿는다. 말안장 모양의 말바위를 거쳐 한림대터에 도착한다. 야사의 통신에 따르면 정여립은 여기 한림대터에서 군사를 조련했다. 돌무더기를 쌓은 성터의 잔해가 남아 옛일을 증거하고 있다. 전주에서 모태를 박차고 나온 정여립은 일찌감치 중앙에 진출해 야무진 실력을 발휘했다. 서인(西人)의 동맹자로서 이율곡의 응원을 받았다. 그러다 이율곡이 죽은 뒤 집권 세력인 동인(東人)으로 열차를 갈아탄 채 이율곡을 비판했다. 이로써 서인의 사냥감이 됐으며 결국은 벼슬을 버리고 낙향, 천반산 자락 죽도에 아지트를 꾸렸다.

천반산 한림대터 기슭에 남은 성터. 정여립은 이곳에서 군사를 조련했다.

정여립은 비범(非凡)으로 버무려진 인물. 학문은 출중하고 무예와 병술에 능란했던 준재. 따라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조직을 구축하고 장악했다. 대동계(大同契)라는 무력집단이 그렇게 발생했다. 600여 명에 이르렀다는 대동계 동아리를 이끌고 왜구를 물리치기도 했다. 그러나 정여립의 할거를 감상하는 서인 세력의 심기는 극도로 불편한 것이었다. 양반.상민.승려.떠돌이 무사 등속으로 짜인 대동계의 구성 내용 자체가 흉측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더욱이 정여립의 반(反)왕권적 이데올로기가 민초들 속으로 스미는 판국이었다. 과연 정여립은 대동계를 통한 혁명을 꿈꾸었는가? 아니면 왜적 방비 차원의 사설 군대를 경영했을 뿐인가? 이에 대해선 "글쎄올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진실을 개운하게 검색할 만한 사적(史的) 건더기가 빈약하니까.

바람에 실려온 정여립의 행장은 천반산을 유령처럼 떠돈다. 한림대터 아래 동편 기슭의 송판서굴은 정여립의 은신처였다고 하며, 남쪽 능선에 돌출한 뜀바위는 정여립이 비호처럼 펄펄 날며 무술을 연마한 바위덩어리라는 사연을 걸치고 있다.

그나저나 무슨 산이 이렇게 오묘한가. 능선을 따르는 동안 좌우 양편으로 툭하면 앗! 오금이 저려오는 낭떠러지가 나타난다. 천혜의 요새다. 산 아래엔 어디에나 강물 경치가 일렁인다. 오른편으론 구량천이, 왼편으론 연평천이 굽이쳐 미모를 다툰다. 크롬 도금처럼 예리한 한낮의 백색 햇살이 째앵 수면에 부서진다. 그러자 강물이 뒤척이며 뒤집힌 고래의 뱃가죽 같은 허연 살갗을 드러낸다. 심오하고도 현란한 절경이다. 저 아스라이 먼 곳에선 마이산(馬耳山)이 말 귀때기 두 쪽을 쩔렁거리며 기찬 조망의 맹렬한 상승에 가담한다.

정여립은 놀라운 심미안의 임자였을까? 그래서 기꺼이 천반산에 입장했을까? 저 조화로운 절경을 재료 삼아 심미안을 쑥쑥 기르고, 그렇게 길러진 안목으로써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었을까? 산과 강의 금실 좋은 동거를 견본으로 하는 대동 세상을 상상했을까? 정여립의 머리는 폭약처럼 위험한 변혁 사상으로 장전되어 있었다. 두꺼비 씨름 같은 당쟁으로 증오와 음모가 부글거렸던 당시 정계의 카오스는 극심한 것이었다. 민생은 도탄에 빠졌고 민심은 요동쳤다. 이럴 때 정여립은 발칙하게도 일종의 인민주권설을 들고 나왔다. 그는 왕위 세습을 부정했다. 충군(忠君) 이념을 거부했다. 천하는 군주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을 표방했다. 이 점에서 사가들은 정여립이 역사상 최초의 공화주의자였다고 평하기도 한다.

산행의 끝자락에서 이윽고 죽도를 만난다. 구량천과 연평천이 합수하는 대목에 위치한 죽도는 섬 아닌 섬이다. 역모 혐의를 받고 쫓긴 정여립은 이 후미진 고샅에서 자결했다. 관군에게 타살된 뒤 자결로 조작됐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그의 시신은 한양으로 실려가 능지처참되었다. 정여립을 실은 역사의 뗏목은 표류할 뿐인가? 그 체중이 버거워서? 그것이 급진적 이단자의 운명인가? 노을에 붉어진 죽도를 제상(祭床)처럼 예배하며 불행한 정여립이여, 하고 속으로 한탄한다. 혼령의 화답인가. 까마귀 한 마리 날며 까옥까옥 구슬픈 청을 뜯는다.

◆ 정여립 사건은 …

정여립 사건은 10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기축옥사로 번졌다. 양반.상민.승려.떠돌이 무사로 짜인 600여 명에 이르는 대동계(大同契) 동아리를 이끌고 역모를 꾸몄다는 것이 죄목이다.

◆ 여행정보

■ 추천 산행코스=진안군 동향면 장전마을의 휴양림 식당 옆 등산로를 따라 정상인 깃대봉에 오른 뒤, 주능선을 따라 한림대터와 뜀바위를 거쳐 곧장 하산하면 죽도에 닿는다. 산행 시간은 약 2시간30분.

■ 맛집=진안읍내의 진안관(063-433-2629)은 이색적인 돼지 요리인 애저 전문집이며, 전원일기식당(063-433-1666)은 진안 토종돼지인 깜도야 전문식당이다.

■ 교통=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덕유산 나들목을 나와 국도 19번을 따라 무주군 안성면을 거친 뒤, 지방도 49번을 이용해 동향면으로 10km쯤 진행하면 장전마을 휴양림식당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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