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100년의 대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던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영국 역사학자 E.H.카(1892~1982)가 환생한다면 아마도 한국에 눌러앉아 연구할지도 모른다. 진보주의 사학자였던 그는 역사를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의 대화”라고도 했다.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라는 정의도 있다. 그가 강조한 진보로서의 역사,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한국에서 드라마처럼 펼쳐졌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24일 “3·1 운동은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벌였던 ‘촛불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만세하라 2019’라는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페이스북에 적은 내용이다. 조 수석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은 지금도 살아 있다”며 “이 정신을 훼손하는 세력은 심판을 받았다”고 했다. 26일엔 임시정부 청사가 있는 중국 상하이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중 컨퍼런스도 열린다. 100년 전 역사와의 대화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제헌헌법(1948년 7월 17일 제정)의 전문에도 3·1운동은 숨 쉬고 있다.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로 시작한다. 제헌 당시를 기준으로 29년 전인 기미년과의 대화가 헌법에 기록된 셈이다.

현재의 헌법 체계인 1987년 개헌 때도 과거와 현재는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적혀 있다. 68년 전 임시정부의 법통, 27년 전 4·19의 이념을 헌법 정신에 새겼다. 대통령 직선제를 처음 도입한 당시 개헌 이유를 적은 글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소통한다. “이제 제12대 국회의 여·야 의원은 지난 39년간 겪은 귀중한 헌정사적 교훈을 거울삼고…경제성장과 더불어 꾸준히 변화·성숙되어 온 민주 역량과 다양화된 민의를 폭넓게 수용하여 대한민국 헌정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합의 개헌안을 제안함으로써…세계 속에 웅비하는 2천년대의 새 역사 창조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고통과 환희의 시간이 교차하면서도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 39년 전의 5·18에 등 돌린 이들도, 2년여 전의 촛불 혁명에 눈 감은 이들도, 언젠가는 역사의 물음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