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스크린 300개 + 마케팅비 20억' 이 대박 공식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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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똑같은 영화를 두고 재미있다/없다, 좋다/나쁘다가 갈릴 때, 서로 얼굴 붉히지 않는 좋은 말이 있습니다. "영화는 취향의 문제"라는 거죠.

근데, 어떤 영화를 볼까의 문제에도 '보는 사람 취향'이 절대적일까요. "그 영화를 한다기에 가까운 극장에 갔더니, 하루 두 회뿐이더라. 제일 빠른 게 네 시간 뒤더라." 최근 영화산업 발전 관련 토론회에 나온 한 평론가의 말입니다. 서너 개의 스크린에 걸려 30분 간격으로 상영하는 영화가 있는 반면 개봉 2주 만에 '교차상영' 신세가 되는 상업영화도 있으니….

국내에는 사실 예술.독립영화를 주로 하는 공식 상영관이 전국에 12개 있습니다.'공식'이란 운영비 일부를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는 경우죠. 문제는 2000년 이후 복합상영관을 중심으로 전국의 스크린 수가 급증(6월 현재 1613개)한 데 비하면, 이런 성격의 영화관 비중은 상대적으로 급감했다는 겁니다. 개봉작을 보려면 무조건 시내중심가로 나가야 했던 시절과 달리 소규모로 개봉하는 영화를 찾아보는 기회비용이 크게 늘어난 셈이죠.

힘들어진 건 관객만이 아닙니다. 같은 토론회서 나온 다른 발제인데요, 개봉 첫 주 흥행 1위를 해야만 수익이 나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진다는군요. 자연 영화사들은 영화의 성격.장르를 불문하고, 첫 주 개봉 규모와 이에 따른 초기 홍보에 매달릴 수밖에 없죠. 발제자는 이를 '스크린 수 300개 이상, 배급 마케팅비 20억원 이상'으로 정리하더군요. 한마디로, 영화 한 편 더 만들 돈을 홍보하는 데 쏟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를 많이 상영한다는 극장 논리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의문은'관객이 많이 들 영화'를 누가 결정하느냐는 겁니다. 나팔바지 일색인 시장에서 디스코바지를 사 입기란 얼마나 힘든데요. 그렇다고 디스코바지의 수요가 없을까요.

불법 다운로드를 애용하면서 "극장에 볼 영화가 없다"는 구실을 대는 영화팬들도 있더군요. 국내 극장.DVD시장보다 훨씬 다양한 영화가 온라인에 돌고 있다는 얘깁니다. 영화사 싸이더스F&H의 차승재 대표는 얼마 전 "머지않아 온라인 시장이 극장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극장의 취향'이 '관객의 취향'을 재단하는 가운데 디지털기술에 힘입은 새 합법시장이 열린다면, 아주 먼일만은 아닐 듯합니다.

앞서 인용한 평론가는 "영화 한 편당 개봉 스크린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과격한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곧바로 "또 다른 규제"라는 반론에 부딪쳤지만, 요즘 극장가의 편식증은 이런 극약처방까지 거론될 정도입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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