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미터기 대란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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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임선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임선영 복지행정팀 기자

임선영 복지행정팀 기자

18일 오전 출근길 이용한 택시에서 내릴 때 미터기에 표시된 요금보다 1500원을 더 내야 했다. 16일 오전 4시부터 서울 택시 요금이 인상되면서 별도의 조견표에 따라 요금을 추가하기 때문이다. 기사 이모(50)씨는 극구 1000원만 더 내라고 했다. 이씨는 “16일부터 모든 손님에게 몇백 원 단위는 깎아주고 있다”며 “(조견표 보기가) 복잡하고, 요금 문제로 승객과 괜한 시비가 붙을까 걱정돼서”라고 말했다.

서울 택시를 탈 땐 늦으면 이달 말까지 미터기에 표시된 액수보다 추가된 요금을 내야 한다. 택시비는 올랐지만 미터기는 아직 옛 요금 체계 그대로여서다. 서울 택시 7만2000대에 대한 미터기 수리는 이달 말에야 마무리된다. 기사나 승객이나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바가지요금이 아니냐’는 불필요한 불신마저 조장한다.

지금처럼 기계식 미터기를 쓰면 요금 체계가 달라질 때마다 택시에서 일일이 미터기를 떼어내 새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이 같은 ‘미터기 대란’은 과거 요금 인상 때마다 되풀이됐다. 조견표를 기준으로 요금이 부과되면서 기사와 승객 간에 시비가 생겼다. 미터기 수리 과정에서 치러야 하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지정된 수리 장소에 택시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교통 혼잡이 극심했다. 18일 수리 현장에서도 기사들이 몇 시간씩 추위에 떨며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18일 오전 인상된 요금 체계로 수리를 마친 택시 미터기가 택시에 설치되고 있다. [뉴스1]

18일 오전 인상된 요금 체계로 수리를 마친 택시 미터기가 택시에 설치되고 있다. [뉴스1]

지금 같은 기계식 미터기가 도입된 건 1960년대로 알려진다. 택시비는 계속 올랐는데 미터기 방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예견된 혼란과 갈등인데도 서울시와 정부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요금 체계가 자동 업그레이드 되는 디지털 앱 미터기가 그중 하나로 기술적으론 거의 완성 단계라고 한다. 서울시가 이번 택시비 인상을 추진한 건 2017년 10월이다. 택시 요금은 5년4개월 만에 올랐다. 충분히 시간이 있었다는 얘기다. 시민과 기사의 불편을 덜어줄 최소한의 준비 없이 요금부터 올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새로운 미터기 도입이 늦어진 것에 대해 ‘규제’ 탓을 한다. 자동차관리법은 미터기 수리와 검정 방식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규제 당국이 이런 문제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서울시는 이번 요금 인상이 확정된 이후인 올 초부터 부랴부랴 ‘앱 미터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앱 미터기도 완전무결한 기술이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하지만 현행 방식이 많은 이들에게 큰 불편을 주고 있다면, 새로운 기술 도입에 대한 고민은 진즉부터 더 깊이 논의됐어야 한다.

임선영 복지행정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