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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뒤 괜찮으면 입장료 내세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역감정 해소연극」이라는 기치 아래 지난 3월21일부터 5월7일까지 부산·광주·서울에서 잇따라 공연됐던 『우덜은 하난기라』(원제 영호별곡)가 9일부터 서울 청파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재공연하면서 관람료 「후불제」를 시도해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단 연극을 보고난 관객들이 『시시하고 재미없거나 불성실한 공연을 봤으니 입장료는 커녕 이 연극 관람에 들인 시간조차 아깝다』는 느낌이 든다면 서슴없이 그냥 공연장을 나서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공짜구경」을 시켜주겠다는 건 아니고 연극이 끝난뒤 관객 각자가 느낀 재미나 감동에 따라 내고싶은 만큼의 「입장료」 아닌 「관극료」를 내라는 이야기다.
영남 처녀와 호남 총각이 지역감정이라는 장애때문에 결혼이 불가능해지자 동반자살한 뒤 원귀가 되어 산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연극은 그 공연수준 이전에 부산극단(재능문화센터 전속극단 오르기)과 호남출신 작가(나상만)의 만남, 영·호남연극인들의 합동공연 등에 따른 지역간 교류및 화합의 산 표본이라는 측면에서 일단 주목받은 정치풍자극.
경상도 품바와 전라도 품바가 등장해서 지역감정의 산물이랄 수 있는 현재의 4당체제를 풍자하고, 사회·군대·프로야구·가정·광주항쟁·선거유세장등 우리사회 전반에 걸친 뿌리깊은 지역감정의 실태를 고발한다.
마침내 영남처녀와 호남총각의 원혼을 달래기위한 영혼결혼식과 민족화합의 굿으로 끝맺는 이 연극은 몇몇 대학의 축제에서도 초청공연되는 등으로 자신을 얻어 재공연과 함께 후불제를 실시키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래 이 공연을 시작한 극단 오르기의 부산재공연(16∼25일 오후7시30분·재능문화센터 소극장)은 후불제가 아니고 최근 새로 창단돼 같은 작품 『우덜은 하난기라』를 청파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극단 다나의 오후4시 공연만 후불제로 되어 있다.
오는 7월15일까지 계속될 후불제에 대해 이번 공연을 기획한 장정호씨는『연극관람료 정상화운동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시내 곳곳에 함부로 뿌려지는 연극할인권및 덤핑초대권에 길들여진 요즘 관객들에게 「제값주고 연극보기」 자세를 심어보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시도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알수 없으나 지난 9∼11일 3일동안 오후4시 공연을 본 1회 평균30명가량의 관객들이 『최소한 할인입장료보다는 더많은 「관극료」를 내고 떠났다』고 극단측은 밝혔다.
한편 연극인들은 지난85년부터 장기공연됐던 시민극장의 『팽』이 후불제를 도입했던 예를 들면서 『우리 연극계의 고질적 병폐인 할인권·초대권 남발에서 벗어나는 것은 더할나위없이 바람직하지만 과연 후불제가 연극관람료 정상화운동의 효과를 가져올는지는 의심스럽다』는 반응들.
뭐니뭐니해도 우선 제대로 된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당장은 좀 어렵더라도 할인권·초대권을 무분별하게 뿌리지 않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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