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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전화 두어 통, 방위비 5억달러 올려”…실제론 787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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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얼굴) 미국 대통령이 알쏭달쏭 셈법을 동원해 한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을 많이 받아냈다고 자랑하면서 앞으로 더 받아낸다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한국이 전화 두어 통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5억 달러(약 5605억원)를 더 내기로 했다”며 “앞으로 수년에 걸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좋은 무역협정과 군사합의를 하기까지 갈 길이 멀지만, 오늘 유리한 지점에 있고, 앞으로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갈 것”이라면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공개 통보한 게 됐다.

“한국 분담금 수년에 걸쳐 오를 것” #액수 차이 커 이면합의 의혹 돌출 #정부 “협정문 국회 제출” 진화 나서 #일각 “실적 부풀리다 수치 착오”

그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분담금 인상을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왜 이전엔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며 “분담금은 계속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그저 하나의 예일 뿐”이라며 “나는 한국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갖고 큰일을 하고 있고, 북한과도 잘 돼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다음 대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한 해 우리에게 50억 달러(약 5조6054억원)를 부담시키면서 (과거) 5억 달러만 내고 있었다”며 “그래서 그들은 5억 달러를 더 내기로 합의했고 앞으로 수년에 걸쳐 그것은 올라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아주 멋질 것”이라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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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5억 달러라고 수치를 내놓자 정부는 당혹했다. 지난 10일 한·미가 가서명한 제10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에 따르면 지난해 분담금(9602억원)보다 8.2%(787억원) 올려 올해 분담금은 1조389억원이다. 5억 달러는 실제 올린 인상분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5억 달러의 근거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이 바람에 다음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5억 달러를 올리겠다고 양국이 이면 합의를 한 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한때 등장했다. 외교부는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폴란드에서 열리는 중동 이슈 관련 장관급 회의 참석차 출국하는 길에 “합의한 액수는 분명히 1조389억원”이라고 못 박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면 합의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협정문과 이행약정 모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서명 후 한·미 정상이나 양국 정부 간 방위비 분담금 추가 협의 가능성도 외교부는 부인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CBS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의 숫자를 4만 명이라 말하는 등 종종 팩트가 아닌 수치를 댔다. 착오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자신의 실적을 자랑하기 위해 부풀린 것 같다”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적 발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식 과장법의 오류를 바로잡는다고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는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제10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은 기한을 1년으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고로 볼 때 곧 시작할 내년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 측은 더 큰 액수를 부를 게 명약관화해졌다. 지난 10차 협정을 위한 협상에서 미국은 당초 12억 달러를 요구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1월 재선을 노리고 있는 만큼 올 연말에는 지지층 결집을 위해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의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할 형편이다. 이 때문에 자신이 직접 여러 차례 강조한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집요하게 챙길 것으로 보인다. 신범철 센터장은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감축 카드와 연관돼 있어 한국의 협상력이 높지 않다”며 “구체적 수치보다는 큰 관점에서의 국익을 보고 협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인상을 너무 기정사실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대변인은 “이번 방위비 분담금 협정의 기한은 1년이지만 ‘한·미 양측이 합의를 통해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 부속 합의문에 들어가 있다”며 “양쪽의 서면 합의로 1년을 연장하도록 돼 있다. 1+1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놓고 한때 ‘부속 합의서’가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연장 가능성 조항은 협정문에 담겨 있으며 부속 합의서는 없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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