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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김앤장 변호사에 “대법관이 귀띔도 안 해주고”…강제징용 판결에 불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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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초중앙로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초중앙로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양승태(71·구속)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조사됐다.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양 전 대법원장의 입장을 확인한 뒤 법원행정처 수뇌부와 적극 접촉해 판결 뒤집기를 시도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12일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김앤장 송무팀을 이끄는 한모 변호사를 2013년 3월 만나 “2012년 대법원판결 선고 전 김능환 대법관이 귀띔도 안 해주고 선고해 전원합의체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한일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데 결론이 적정한지도 모르겠다”는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후 김앤장은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과 현홍주 전 주미대사 등 전직 외교부 고위공무원과 법관으로 구성된 강제징용사건 대응팀을 만들어 양승태 사법부 고위 관계자들을 비공식적으로 수시로 접촉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 앞서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강제징용 재판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려면 외교부의 공식적인 의견이 필요하다"면서 "김앤장 측에서 ‘정부 의견서 촉구서’를 제출하라"는 조언도 해줬다는 내용도 공소장에 포함됐다.

김앤장 측은 양 전 대법원장에 “외교부가 소극적이어서 걱정이다”고 도움을 요청하자 “외교부의 요청으로 시작된 일인데, 외교부가 절차에 협조를 하지 않는다”며 정부 의견서 제출 시기와 진행 상황을 협의했다고 한다. 이어 임 전 차장은 김앤장 측에 “(외교부에 지금) 촉구서를 내라, 주심 김용덕 대법관과도 얘기가 됐다”고 문서 제출 시기까지 조율했다. 김앤장 측에서 써온 촉구서를 직접 수정해주기도 했다.

11일 대법원에서 대법원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 [뉴스1]

11일 대법원에서 대법원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 [뉴스1]

양 전 대법원장은 김앤장이 촉구서를 제출한 직후인 2016년 10월께 한 변호사를 만나 “잘 되겠지요”라며 전원합의체를 통해 청구 기각 판결을 내주겠다는 입장을 확인해줬다.

검찰은 공소장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이 최소 네 차례에 걸쳐 한 변호사와 직접 만나 전원합의체 회부 등 일본 전범기업이 원하는 대로 절차를 진행해 줄 것이란 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에는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국회 입법 추진에 반대한 사실도 드러났다. 2015년 국회에서 ‘일제강점하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에 관한 특례법안’이 발의되자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은 박병대 전 대법관,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게 “법률안이 제정될 경우 소급 입법에 해당해 위헌 시비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 판결을 기산점으로 삼아 민법상 소멸시효 3년이 지나도록 재상고심 결론을 미루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었다.

박병대 전 대법관의 승인 아래 법원행정처는 국회에 법률 제정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전달했고, 법안은 결국 2016년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지됐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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