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해괴한 논리로 진실을 가릴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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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한 특강에서 "참여정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을 가장 원형적으로 실현해 가는 정부"라 했다. "경제는 잘하는데 민생이 어렵다"고도 했고 "민생이 고달픈 것은 외환위기가 가져온 후유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발언에는 간절함이 배어 있다. 세종대왕이 와도 해결하기 불가능한 일인데 국민이 너무 몰라준다는 것이다. "다음 정권이 어디로 가더라도 행정복합도시는 되돌릴 수 없다"면서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지 모르지만 행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우리는 먼저 이 실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차기 대통령보다 본인 스스로 행복한 대통령이 되어 주기를 국민이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했으면 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다음 대통령 입에서 "나는 행복한 대통령"이라는 발언이 나오기 힘들다. 십중팔구 "행복도시 만든다고 노 정권이 200조원이 넘는 국가부채에다 엄청난 부동산 거품을 물려주는 바람에 대통령 짓 해먹기도 힘들다"고 타박할 것이다. 민생 따로, 경제 따로라는 발상 자체도 처음 듣는 해괴한 논리다.

참여정부가 헌법정신에 가장 부합한다는 자화자찬도 좀 심하다. 코드 맞는 사람끼리 세미나에서 하는 발언인지 몰라도 우리 사회의 평균적 현실 인식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지속적으로 흔들어온 정권이 아닌가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북한 인권에는 눈감고, 우리 내부는 편 가르기 해 반대편을 죽기살기로 매도하는 것이 우리 헌법정신인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이런 돌출 발언들이 자꾸 불거지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지방선거 직후 한나라당은 "우리가 잘해서 이긴 게 아니다" "오버하지 말자"고 몸을 낮췄다. 반면 청와대는 "국민이 우리를 너무 몰라준다" "경제난은 외환위기 때문"이라고 남 탓을 하고 있다. 어느 쪽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집단으로 비칠지 되묻고 싶다. 이 실장에게 국민 설득은커녕 속만 뒤집어 놓는 이런 특강은 자제해줄 것을 희망한다.